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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Jan 09. 2024

운동, 좋아하세요?

요즘 제가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거나, 처음 만나면 꼭 묻는 질문입니다.


'운동, 좋아하세요?'


햇수로 2년 차, 저는 펜싱을 하고 있습니다. 개월수로 따지면 15개월가량 해온 것 같습니다.

펜싱은 사실 크게 관심이 없는 종목이었는데, 우연히 접한 드라마에서, 그리고 우연히 들어선 가게 옆이 펜싱장이어서. 우연에 우연이 겹쳐 펜싱을 시작했습니다.

펜싱은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꽤 강합니다. 보통 펜싱한다고 말을 하면, 주변사람들은

'그거 돈 많이 들지 않아?'라고 질문을 합니다. 

물론 장비 값이 비싸긴 합니다. 고가 브랜드로 장비를 구입을 하게 된다면. 

하지만 연습용 장비도 충분히 좋고, 펜싱장에서 대여를 해준다면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는 아닙니다. 그저 운동화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펜싱에는 세 가지 종목이 존재합니다. 전신 찌르기가 가능한 에페, 상반신 찌르기와 베기가 가능한 사브르, 상반신 중, 팔과 머리를 제외한 부분만 공격이 가능한 플뢰레

저는 이중 에페와 사브르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페는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두고, 사브르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에페를 하다가 사브르를 하게 되면 초반에 꽤 많은 부분에서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에페는 '공격권'이 없기 때문에 공격을 하려다가 뒤로 물러서도 괜찮습니다. 상대가 공격을 할 것 같으면 피한 후, 나의 템포에 맞춰 다시 경기를 운영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브르에는 '공격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격을 하려다가 상대의 반응에 놀라 팔을 뻗거나, 스텝이 끊기면 상대에게 공격권이 넘어갑니다. 

또한 '꾸드불'이라는 것이 에페에는 존재하는데, 에페는 동시타가 가능하지만, 사브르에는 동시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페에서 둘 다 동시에 불이 들어오면 양 쪽 다 득점이지만, 사브르에서는 더 빠른 선수, 혹은 공격권이 있는 선수에게 점수가 올라갑니다. 

초반에 사브르를 하면서 규칙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경기 심판을 볼 때, 에페는 비교적 쉽지만, 사브르는 경기를 보는 눈도 길러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꽤 많았습니다.



처음 펜싱을 시작했을 때 스텝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펜싱 첫날, 몇 년 만에 하는 것 치고 사다리 훈련을 꽤 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펜싱을 잘할 줄 알았습니다. 

펜싱은 몸뿐만 아니라 머리도 함께 겨루는 스포츠입니다. 심리전을 잘 활용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체력도 필요합니다. 체력만 좋다면, 경기운영은 잘 못하는 바보가 됩니다. 그리고 그 바보가 바로 글쓴이입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특히 에페를 했을 때에는 1년 동안 경기를 마음에 들게 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에페는 동시타가 가능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신경 쓸 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영부영 1년을 펜싱을 했더니 성과는 안 나고, 체력훈련과 다리운동의 달인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중간에 큰 이벤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꽤 힘든 사건이 있었고, 이겨내기 위해 뭐든 도전해 보자는 생각을 갖고 사브르를 도전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사브르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원래 칼의 반정도 되는 무게, 새로운 마스크, 메탈재킷. 

두근거리고 설레었습니다. 에페를 하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거운 칼이었습니다. 세게 잡다가 방아쇠수지를 겪고, 다른 칼을 쓰다가 손목이 아프기도 했던 차, 가벼운 칼은 제겐 신세계였습니다.

그렇게 사브르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에페를 할 때에는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시도조차 못했던 대회부터, 대회에 나가기 위한 장비들을 구매하기까지. 이 모든 걸 두 달 만에 시도했습니다. 이제는 도복과 마스크와 장갑이 아까워서라도 펜싱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펜싱은 매력적인 스포츠입니다. 체력적으로 한계까지 몰아붙이면서 상대의 빈 곳을 찾아 공격하는 스포츠. 

사실 처음 펜싱을 시작했을 때, 장비들의 이질감 때문에 꽤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묘하게 가려지는 시야, 뻣뻣한 장갑, 무거운 도복, 와이어의 잡아당기는 힘, 칼의 무게와 손잡이 등등. 그때에는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이 모든 요소들이 오히려 펜싱을 즐기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쨌든 이 불편함은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펜싱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감수하는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펜싱을 이루고 있으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물어보고 다닐 예정입니다.


'운동,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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