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영화의 한 인물 만드는 과정은 시나리오 작법의 출발점에 있다.
그의 성별과 나이, 직업, 사용하는 언어, 스타일과 몸짓, 주거지, 의상의 선택 등 외면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의 과거, 그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 그가 지금 욕망하는 것부터 그는 잔인한 사람인가, 남에게 베푸는 사람인가 등 디테일한 내면적 모습까지 설정하면서 그에게 하나의 인격을 부여한다. 그 뒤, 구조화된 이야기 속에 그를 풀어놓는다. 그가 갈등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신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신은 어떤 생각을 하며 나를 만들었을까.
영화감독을 꿈꾸며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왔지만, 20살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웃음을 잃은 그는 차에서 생활하며 누군가에겐 집시라고, 누군가에겐 사랑이라 불렸다.
'음... 이걸로 부족한데. 더 큰 시련을 줘야겠어.'
2013년 크리스마스. 뭔가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며, 영화인으로서 스타트도 나쁘지 않았다. 1년에 두세 번은 해외를 나갔고 심지어 통장에는 20대 중반치고는 많은 돈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성급히 찾아온 평온은 심각한 불안을 가져왔다.
불안은 사실로 해소할 수 있다. 다만 나는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이제 괜찮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였을까...
자기 철학이 나를 앞으로 이끄는 전차였다면, 절망과 불행은 내가 무너져도 돌아갈 수 있는 안락한 언덕이 되어있었다.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보다 나를 동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큰 안락함을 느꼈다. 사랑이나 행복 같은 달달한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니까. 나의 편안함을 위해서 나는 불행하다가 아니라 당위적으로 불행해야 했다.
내가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집시와 보헤미안의 타이틀을 잃기 싫어서, 주위의 동정이 사라지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을 까봐, 다시 외로워질까 봐 무서웠나. 아니면, 그렇게 힘든 일을 겪고도 멋지게 살고 있구나 소리가 듣고 싶었나.
돌아온 위선자여.
단어의 힘은 참 무섭다. “우울하니?” 와 “우울증이니?” 는 큰 차이가 있더라.
그때까지 나는 내가 단 한 번도 우울증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너 우울증 같다'라고 했을 때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지금 생각건대, 가짜 우울증이다. 우울하긴 하다만, 우울감을 위선의 방패막 또는 동정심 따위의 관심의 목적, 즉 방어기제로 활용하는 것이다. 아이가 불리할 때 꾀병을 부리는 것처럼.
여담으로 최근 '번 아웃'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이 단어가 없을 때에는 그저 앞만 달리다 보니 지쳤다 힘들다 정도였지만, 이제는 일을 하면서 극심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일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 즉 정신적 탈진이라는 질병으로 분류된다. '번 아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스스로를 '번아웃'이라 이름 지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더 무너뜨리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처음으로 신경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입에 대지 않던 술을 시작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분이랄까.
<라스베가스를 위하여>의 니콜라스 케이지처럼 술과 약에 찌든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
그래서까지 동정론을 세워야 했어.? 비겁한 겁쟁이.
이후, 눈을 뜨면 술을 찾았다. 일어나자마자 물대신 술을 마셨다. 몇 개월쯤 그렇게 살자 영화 보는 것이 지겨웠고 시나리오를 쓰거나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괴로웠다. 대신 술에 젖어 과거의 슬픔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릴 때 오히려 평온했다. 가끔은 실타래처럼 엉켜버려 풀리지 않은 매듭 같은 나의 삶을 그냥 가위로 잘라 버리고 싶었다.
블로그의 영화 리뷰수를 보며, 통장의 돈을 보며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니.?
숫자를 그렇게 증오했던 나는 숫자로 위안을 받고 있었다.
거창한 자기 철학을 세우는 것과 내가 철학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차나 길바닥에서 자면 시비가 많이 걸린다.
도둑놈도 많고 취객도 많고, 차에서 자살한 건 아닌지 걱정해 주는 사람도 오지랖처럼 귀찮게만 느껴진다.
나는 싸운다. 핸드폰 도둑놈에겐 주먹을 날리고, 자살 신고자에겐 상관하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고, '또 너냐' 하며 찾아온 경찰에겐 알면 꺼지라고 말한다. 일산에 사는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벽마다 병원이나 경찰서로 달려왔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녀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그럼에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뇌가 술과 약에 축축이 젖어서, 그녀의 축축해진 눈은 보지 못했다.
함께 말레이시아로 떠났을 때 일이 터졌다. 아니 그녀가 터졌다.
바투 동굴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새가 그녀의 머리 위로 새똥을 날린 것이다.
갑자기 그녀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뭐 저런 걸로 저렇게 우냐 웅성거렸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새똥 탓이 아님을.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녀를 잃은 나는 더 망가져만 갔다. 끈끈했던 감독님과 싸우고 현장에서 책임감 없이 뛰쳐나갔고, 동료들과 항상 으르렁댔다. 그 무엇보다 더는 유치장에서 낯선 천장을 보며 눈을 뜬 나를 찾아와 줄 사람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때부터는 경찰 사건처리 통지서가 부모님 댁으로 날아갔다. 나는 집이 없어 등본상 주소가 부모님 댁이었으니까. 그렇게 부모님의 가슴에도 대못을 박아대기 시작했다.
2014년 어느 날 새벽,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하다 받아보니,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이었다. 고향으로 서둘러 내려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으셨다. 며칠 뒤,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시던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다. 스스로를 향한 분노는 점점 더 커져갔다.
이걸 원한 거였니?
'영화감독을 꿈꾸며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왔지만, 20살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웃음을 잃은 그는 차에서 생활하며 누군가에겐 집시라고, 누군가에겐 사랑이라 불렸다. 현재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심각한 알코올중독자며 손에서는 담배를 놓는 일이 없다. 그리고 중증도의 극심한 우울증 환자다.'
그래. 배경과 갈등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네. 이제 어떡할 거야?
'그는 이제 생을 마감하려 한다.'
나는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하나 알게 되었다. 인생은 어쩌면 엔딩과 엔딩의 연속인 것 같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또 다른 엔딩을 위해 달려가겠지. 그러나 영화는 분명하다. FINE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가고 막이 처지고 극장의 불이 켜지면 그대로 끝인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엔딩을, 빨리 내 삶의 끝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