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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앙 Feb 09. 2024

첫 번째 자살.
사람은 유서에도 거짓말을 쓴다.

2014년 3월

2014년 미얀마.

일이고 나발이고 즉흥적으로 떠난 그곳에서 나는 많은 감정을 느꼈다. 속세에 구속되지 않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행복이 아닌 불행이었다. 정확히는 나의 불행. 이곳에서 내가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욕심 없이 산다는 것, 돈이 없어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연의 나라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미얀마를 걸으며 문득 안 좋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한국에 갈 생각을 하니 짜증이 밀려오고 다시 차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죽고 싶었다.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충동을 느낀다. 그것을 이겨내려고 약과 담배와 술에 의지한다. 그러니 내가 언제 어디서 시체로 발견되어도 그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조사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병도 없고 원한 진 사람도 없다. 내 사인은 오직 자살뿐이다. ]

-2014년 3월 9일 일기 중에서.

      



14년 첫 꽃이 필 무렵,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다른 건 몰라도 추진력 하나는 끝장난다고 평가받던 나는 그 명성에 걸맞게 미련 없이 죽음을 준비했다. 먼저 주변을 정리해야 했다. 곧 떠날 인생, 주지는 못했어도 남기지는 말아야지. 빚지고는 살... 아니 죽을 수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 선의에는 선의로, 악의에는 악의로. 그것이 돈이던 마음이던 내 방식대로 빚을 청산했다. 내 이름 알고, 내 이름 불러본 적 있고, 내 이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등에 칼을 꽂은 인간들을 찾아가 무작정 턱을 돌리고 합의금을 던졌다.


"이 돈 먹고 평생 그렇게 살아라."


나를 돌봐주었던 은인들에게 나름 식사와 감사의 봉투를 전달했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행복하게 살아요."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은 나와 죽음 사이의 모든 것입니다. 오래 살아요.'


하지만 가족들에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동생 명의로 조그만 집을 하나 샀다. 그렇게 돈과 마음의 빚을 정리하고는 휴대폰 대리점으로 가서 도둑놈들이 쌓아 올린 휴대폰 할부금까지 일시불로 갚았다.

'이제 이 사회에, 세상에도 빚은 없다.' 그렇게 믿었다. 꿈을 위해 모아둔 돈을 죽음에 썼다.


이제 나는 죽습니다.



 

죽음의 선택지는 다양했다.

밧줄로 목을 매달거나, 깊은 바닷속에서 숨죽이거나,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질 수도 있었다. 나는 결국 내 시체를 봐야 할 가족들을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죽음을 목적지에 둔 사람은 시야가 좁아져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내 죽음은 잊혀도 내 깨진 두개골은 기억할 것 아니야.


하지만. 

교수형에 처한 시체는 혀가 길게 내려오고 괄약근이 풀어지며 대소변이 흘러나온다.

익사체는 몸이 물에 탱탱 붇고 건져 올릴 때 살점이 여기저기 뜯겨나간 상태로 배에 가스가 차서 떠오른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두개골과 사지가 떨어져 나갈 것이고

달리는 차량에 몸을 던져서는 안 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나는 고민 끝에 손목을 긋기로 결심했다.

그 방법이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우아하고 고상한 시체를 남기는 죽음처럼 보였다.

솔직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봤던 장면이었고... 욕조 커튼을 열었을 때 장밋빛 핏물에 담가진 남자라.


이제 유서를 써야겠지. 이 빌어먹을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편지.

그때 위선자가 속삭였다.


'그래도 예술인인 척하며 글로 먹고살았던 놈인데, 유서는 완벽해야 하지 않겠어?'


나는 서울에 있는 모든 소품샵과 서점을 하루 온종일 돌아다니며 고급스럽고 빳빳한 편지지를 찾아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이란 목적이 생기니 활동량이 많아지고 힘이 났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졌다.

술을 마실 여유가 없었다.  


몇 군데를, 몇 시간을 들였을까. 기어코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찾았다.  

나는 모텔 방을 하나 잡고 거침없이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아, 손에 힘이 들어가 글자가 삐뚤어졌다. 다시 써. 나는 실패한 유서를 구겨 던진다.

이런, 땀에 젖은 손날에 만년필 잉크가 번졌다. 다시.

만년필 잉크가 너무 많이 나왔다. 검색해 보니 맞춤법이 틀렸다. 전체적으로 글이 기울어졌다.


다시. 다시. 다시.


새벽 다섯 시쯤, 편지지가 다 떨어져서 거사는 다음 날로 미뤄졌다. 나는 다음날 '다시' 그 서점에 가서 편지지를 모두 사들였다. 혹시 몰라 차선책도 구입했다. 그렇게 밤을 새 가며 고치고 고치며 쓰다 보니 결과물은 유서가 아니라 내 죽음을 멋지게 표현해 내는 시가 되었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은 유서에도 거짓말을 쓴다.



[나의 죽음은 슬픔이 아닙니다. 나의 슬픔은 그대들의 몫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검은 옷을 입지 마세요.]

- 유서 중에서    




오래간만에 느끼는 집중력으로 유서를 멋지게 완성하고는 칼같이 반듯하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남은 돈으로 담배 두 갑과 편의점에서 가장 좋아했던 위스키를 샀다.

차는 먼지하나 나오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닦았다. 어디서엔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단정히 했다.


숨이 가빠온다.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면 위스키를 마신다.

위스키를 마시면 담배를 태운다.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슬그머니 용기가 생겼다.

아닌가, 분노였나. 아닌가, 자기 연민이었나. 술은 감정을 마비시킨다. 여러 갈래의 감정들을 한 가지의 결론으로 즙짜듯 모으는 것이다.


결론. 내 시체를 보며 울어라.


비위가 약하신 분들을 위해 상세한 설명은 피하겠다.

나는 주저흔조차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목표를 수행했다.

돼지뼈를 썰어도 부러지지 않을 튼튼하고 날카로운 칼로 오른손 손목을 힘 있게 가로로 그었다.

혹여나 하는 마음이지만, 따라 하지 마시라.

요즘 날이 춥고 생활이 힘들어 죽음을 스스로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더욱이 이 볼품없는 남자의 이야기의 끝을 보고 생각이 바뀌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




콧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손목에서 피가 '찔끔' 흘러나왔다. 흐르긴 흐르는데 이렇게 흘러서는 한 삼일 걸리겠다 싶더라.

분명 깊게 잘 들어갔음에도 말이다. 잘못했나 싶어 한 번 더 힘을 줬지만 결과는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손목을 가로로 그으면 죽지 않는다. 동맥 따라 세로로 그어야 된다고 의사가 말하더라.


다음 날, 병원에 스스로 걸어가 여러 바늘을 꿰맸다.

의사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친구랑 장난치다 이렇게 되었다고 했지만 의사는 '어디서 날 병신으로 보나'라고 눈으로 말했다'너 같은 애가 한 둘인 줄 아니' 였을지도.


이것이 나의 첫 자살시도 이야기다.


[날이 갈수록, 찢어 죽이고 싶은 기억이 너무 많다. 그게 힘들어 나를 죽이고 있다. 그러고 산다. - 2014년 10월 19일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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