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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앙 Feb 16. 2024

죽음과 후회의 할렐루야를 외치며.

2019년 7월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2019년 7월.



당신은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남자의 눈을 매일 아침 마주쳐야 하는 사람의 심정을 아는가.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희망이 없는 그 남자를 마주한다. 그건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은근히 긴 하루를 또 어떻게 살아가나, 아니 버티나 하는 생각으로 나는 잠시 멍을 때린다. 외롭고 고독한 하루를,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또 버텨야 할 것이다. 나는 아무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 내가 살아있음에 어떠한 특별한 이유도 없음을 직감한 채 하루를 시작한다. 


걸인처럼 길어진 머리를 감고, 까칠해진 얼굴을 비누로 벅벅 닦아낸다. 해가 진 뒤 알콜의 힘을 빌리기 전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나. 무슨 이유로 나는 다시 나를 닦아내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손은 자동적으로 물기를 수건으로 닦는다. 혹시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하다.

늙고 지친 몸뚱이, 동태처럼 흐리멍덩한 눈 그리고 섞어빠진 정신.     

 

가족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제야 조금 진정된 가족들의 삶에 다시금 큰 해일이 덮칠 것이다. 나는 그 사태 많은 막아야 했다. 지금까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걱정을 안겨주었다.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자신을 보는 슬픈 눈의 가족들에게 은 다시는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 않을 맹세처럼 무의미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그저 잘 지내가 있다고 전화 너머로 거짓말을 하는 것과 무릎을 꿇고 하늘에 가족의 행복을 기도하는 것뿐이다.      


기도를 끝내면 간단한 요기를 한다. 나는 하는 일이 없기에 그 마저도 사치스럽고 부끄럽다고 느낀다. 음식의 맛을 찾을 낯짝은 없다. 전날 술이 과했다면 속풀이를, 그렇지 않다면 마른밥을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돼지와 다를 바 없는 혹은 그보다 못한 인생이지만, 먹지 않는다면 육체의 죽음과 직결되어 그것은 다시 가족의 평화를 뒤흔들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먹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법칙으로 밥에는 돈이 필요하고 돈에는 노동이 뒤따른다. 푼돈이지만 말이다. 영화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번듯한 직장을 찾아볼까. 거울 속 남자는 x축의 꿈과 y축의 빵이 원점을 그리는 반비례 그래프에서 꿈의 바운더리를 택한 자들의 삶을 살았더랬다. 꿈을 택하면 배고플 가능성이, 빵을 택하면 후회할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 현실과 마주해야 하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짓거리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주변 모든 것은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는 것 같다. 

달이 매일 지구를 돌고, 지구가 매일 태양을 돌 듯이 모든 것들이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 우주 공간 안에 남자는 먼지 같은 소행성처럼 목적 없이 어디론가 떠돌 뿐이다. 

결국 어딘가 부딪혀 깨져버리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영겁의 세월을 표류해야 한다. 

무엇이든 부딪혀 나를 멈춰주는 것이 거울 속 남자의 마지막 소원이다. 


나를 멈춰주길. 나를 부숴버리길. 나를 죽여주길 바라면서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선다. 





I heard there was a secret chord

비밀스러운 화음이 있다는 걸 들었어요


that david played and it pleased the Lord

다윗이 연주해 신이 즐거워한 화음


but you don't really care for music, do you

하지만 당신은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죠?


well it goes like this the fourth, the fifth

그 화음은 이렇게 진행 돼요, 4도에서 5도


the minor fall and the major lift

단조로 내려갔다가 장조로 올라가죠


the baffled king composing Hallelujah

혼돈에 빠진 왕이 만든 노래


Hallelujah...



여름 해가 불을 뿜던 7월의 어느 금요일, 바닥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밤 11시. 

한 손에 8000원짜리 싸구려 포켓 위스키를 들고 술과 음악에 온몸을 맡긴 채 공원을 걸으며 홀로 비틀거리던 나는 이어폰에서 레너드 코헨의 hallelujah 가 흘러나오자 걸음을 멈췄다. 이제 좀 앉아야겠다 싶어 주변에 빈자리를 살피다 공원 화단 앞에 모기가 많을 것 같은 벤치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강아지와 밤산책 나온 사람들, 그런 강아지들이 귀엽다며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어린 커플, 치킨에 맥주 한 잔 하며 불금을 즐기는 번듯한 사회 구성원들의 웃음소리가 공원을 적당히 채우고 있었다. 

 


I've seen your flag on the marble arch

대리석 아치 위로 당신의 깃발이 보였지만

 

but love is not a victory march

허나 사랑이란 승리의 행진이 아닐지니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그건 단지 차갑게 부서진 '할렐루야'


Hallelujah...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왜 이리 슬피 들리는가 문득 궁금해져 검색을 했다. 이 노래는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한다. 다윗은 충직한 부하였던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만든 뒤, 그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했다고 한다. 신은 진노해서 다윗과 밧세바의 첫 아이를 죽게 만들었고 다윗은 후회하며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찬양이 아니라 후회의 할렐루야라... 

그때 노래가 멈추고 20년 지기 고향 친구 놈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잘 사나"


친구의 목소리에도 술이 들어가 있다.


"똑같지 뭐... 뭔 일이고."

"그냥 전화해 봤다."


"... "


서로의 침묵 속에서 대화가 오고 간다. 


'그때가 그립다/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었는데/ 눈 뜨면 하루가 설렜지 / 지금은? / 먹고 사느라 바쁘다' 


"조만간 내려갈게. 술이나 한 잔 하자"


기약 없는 약속으로 전화를 끊었다. 불현듯 피로감이 몰려왔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답답함과 미래에 대한 갑갑함과 현재를 살지 않았다는 후회를 했다. 





그때 작은 체구의 남자가 반쯤 비운 술병과 함께 나의 반대편 공원 끝자락 벤치에 앉았다.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지만 나는 그 남자가 울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도 후회의 할렐루야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조용한 산책로에 이따금 그의 훌쩍거림이 들렸고, 그 소리가 불편했는지 사람들은 하나 둘 그의 옆을 떠났다. 


사실 그 남자와 대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슬픔까지 감당할 용기가 없어하지 못했다. 그 남자는 술병의 반을 단 번에 털어내더니 조용히 사라졌다. 그가 떠나고 내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 주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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