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고유성과 특별함에 나의 몫은 없다
아이가 무엇을 잘할 때,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 그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아이의 성과를 나의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엘리 선생님이 엘리는 뭐든 잘해서 ‘rien à dire’(말할 게 없어요)라고 했을 때,
엘리가 갑자기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할 때,
엘리가 운동신경이 좋다며 누구는 체조를, 누구는 축구를, 누구는 태권도를 시켜보라고 말할 때.
나의 어깨가 으쓱 올라가며 나에게 하는 칭찬인 양 굴게 되는 바로 그때.
나 스스로에게 다그치듯 상기시킨다.
아이는 부모의 훈장이 아니다.
아이는 제 모양대로 큰다.
부모가 마련해 준 토양은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흙을 뚫고 싹을 틔워내는 건 온전히 아이의 몫이다.
나는 물을 줄 수도, 거름을 줄 수도 있지만, 땅의 무게를 견디며 들고 있는 것도, 마침내 땅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것도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가 부모의 훈장이 되는 순간, 아이가 나의 가치를 입증하는 수단이 되는 순간, 아이의 실수를 견디기 힘들어진다.
아이의 실수가 과정이 아닌 실패로 느껴지고, 나의 가치가 추락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잘 키워보고 싶다는 핑계 아래 아이를 다그치게 되고, 아이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 보게 된다.
그러다가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엄마와 아이 둘 다 비관의 늪에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의 존재 그대로 고유하고 특별하다.
그리고 아이의 고유성과 특별함은 전부 빠짐없이 아이의 것이지, 그 안에 나의 몫은 어디에도 없다.
“엄마 나 오늘 수학 하나도 안 틀려서 별스티커 받았어!”
“엄마 이거 xxx도 xxx도 못하는데 나 혼자만 할 줄 알아!”
(유사품으로 둘째의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바지에 똥 안 쌌어!”도 있다.)
오늘도 아이들은 나에게 자랑할 거리가 넘쳐난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말한다.
“어우 야 축하해! 너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