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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필 May 27. 2024

프랑스 아이들은 소풍날 뭘 먹을까?

프랑스의 학교 소풍 도시락 이야기

지난 글에 이어 먹는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바야흐로 프랑스에도 소풍의 계절이 찾아왔다. 

4월 봄방학이 끝난 후 7월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전까지, 오뉴월은 본격적인 소풍철이라 평일에는 늘 시내 어디서나 단체로 이동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문득 5년 전 봄이 생각난다.


첫째의 생애 첫 소풍날을 앞두고 나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먹고사는 일에 진심인 나는 일찌감치 알고리즘에 이끌려 귀엽고 건강하고 맛도 좋을 캐릭터 도시락을 이론적으로 섭렵한 상태였다.

소풍은 김밥! 그러나 그냥 김밥은 거절한다! 

꽃, 하트 모양으로 햄이나 지단 등을 찍어낼 수 있는 스탬프도 이미 구비하고 있었고, 곰돌이의 눈이 될 검은깨를 찾아 저 멀리 중국 슈퍼까지 원정도 다녀왔다.

아이가 소풍 도시락을 여는 순간 '우와' 소리를 내며 친구들이 모여들고, 우리 딸의 어깨가 수줍게 솟아오르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무한반복으로 재생되었다.


그리고 소풍 전날 아침, 담임선생님께 이메일을 받았다.

(...)
다음과 같이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 주세요.
*(식빵) 샌드위치 (바게뜨 안됨, 씹기 너무 단단함)
*작은 감자칩 또는 밀폐용기에 담은 작은 조각 야채 (방울토마토, 당근, 오이 등)
*마시는 요거트 또는 조각 치즈
*(뭉개지지 않는) 과일 또는 퓨레
*물 (탄산음료, 캔 안됨)
*키친타올/손수건


아직도 기억난다. 나의 괴성에 남편이 놀라서 뛰쳐나온 걸.

부랴부랴 동네 슈퍼를 돌아 다시 장을 봤다.

이메일에 적힌 대로 아이와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고, 아이가 직접 소풍가방을 싸게 했다.

3-4세 아이들만 30년 넘게 가르쳐 오신 베테랑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본인이 먹을 음식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4세 둘째의 소풍 도시락. 샌드위치, 오이, 배, 견과류, 사과퓨레, 오렌지주스


우리가 보통 자연이 어우러진 야외에서 즐기는 소풍을 뜻할 때 쓰는 피크닉이라는 단어는 불어에서 유래했다. 

pique-nique에서 피크(pique)는 '집다'라는 동사인 piquer에서 왔고, 니크(nique)는 '중요치 않은 작은 것'을 뜻한다.

프랑스에서 피크닉은 소풍 도시락 자체를 뜻하기도 하는데, "피크닉을 가지고 오세요"라고 하면 말 그대로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작은 조각 음식"이 담긴 소풍 도시락을 싸 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 같은 초짜 학부모를 위해 선생님이 친절하게 도시락을 어떻게 싸와야 하는지 설명해 주신 것이지, 다른 프랑스 부모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단다.

한국인에게 소풍은 김밥이듯, 프랑스인에게 "소풍 = 샌드위치와 감자칩"이 국룰인 셈이다.


4세 아이들의 소풍 점심시간.

한껏 신이 나서 배낭을 열어젖히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소리치신다.

"Mangez vos sandwichs d'abord!" (샌드위치부터 먹어야 해!) 

아이들의 소풍 샌드위치는 기본이 빵에 햄과 치즈가 전부이다.

홈메이드 샌드위치가 많이 보이지만, 슈퍼에서 산 샌드위치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친구 엄마 얘기를 들어보니, 집에서 만든 건 안 먹으려고 하는데 슈퍼에서 자기가 직접 고른 건 좋아해서 어쩔 수가 없단다. 프랑스 아이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대기업의 맛!)

작은 감자칩 한 봉지는 아이들이 샌드위치를 다 먹어야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 역할을 한다.

방울토마토, 오이, 당근, 사과에는 건강을 안 챙길 수 없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담겨 있다.

짜서 먹는 과일 퓨레와, 개별 포장된 작은 치즈, 달달한 비스킷 한 조각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디저트가 된다.


프랑스의 흔한 소풍 점심시간
알리스는 칩을 먹고 싶어 샌드위치를 서둘러 먹었다.
토마의 소풍 가방 안에도 빠지지 않는 감자칩, 그리고 토마토와 사과.
감자칩 대신 견과류를 넣어주었는데 다행히 잘 먹는 둘째
프랑스 학교 학부모 5년 차. 이제 변형된 샌드위치도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니피타에 햄, 치즈, 상추, 토마토, 아보카도를 넣었다.


나도 어엿한 프랑스 학교 학부모 5년 차.

이제 아이 소풍 도시락 정도야 눈 감고도 만든다.

식빵 대신 조금 더 건강한 빵 종류를, 감자칩 대신 견과류를 넣는 요령도 피울 줄 안다.


지난주 소풍날, 둘째네 학년에 한국 가족이 하나 있는데 아이는 꼬마김밥을 싸왔고, 어머니께서 선생님 김밥도 따로 준비하셨더라.

나 어릴 적 소풍날이 떠오르는 그 정스러움이 어찌나 좋던지!

한편 프랑스 유사 이래 유일무이한 도시락을 싸보겠다던 나의 옛 열정도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 열정, 언젠간 되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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