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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필 May 03. 2024

3세에 피카소를 보고, 4세에 루브르에 갑니다

프랑스의 문화예술교육 이야기 

첫째가 마테넬 학교에 들어간 후 처음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 것은 마크 아얀트 (Marc Allante)라는 중국계 프랑스인 작가의 그림 사본이었다.

아이는 이 그림을 자기가 직접 골랐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주었고, "색깔이 좋았다"라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검색을 해보니 그의 웹사이트가 있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구경하고, 아이는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도 그렸고, 작가에게 인스타그램으로 영상편지를 보내서 답도 받았다.

마크 아얀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그림

그 후로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는 예술가의 이름과 그의 작품이 담긴 포스터를 하나씩 골라 가지고 돌아왔다. 

그 이름도 유명한 피카소, 샤갈, 고갱도 있었고, 처음 들어보는 사진작가, 설치/행위예술가, 일러스트레이터도 있었다.

포스터를 방문에 붙여 놓으니 오며 가며 눈길이 잠시라도 머물렀고, 어느덧 가족 모두의 일상에 매주 새로운 아티스트와 그의 작품이 스며들었다.


피카소와 엘카소


프랑스 학교는 마테넬(3-5세) 단계부터 문화예술교육이 깊이 침투해 있다.

프랑스 정부는 예술 및 문화교육 (L’éducation artistique et culturelle: EAC)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며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의 예술, 문화적 생활 참여 촉진을 목표"로 한다고 홍보한다.

특히 2020년에는 빈곤 퇴치와 취약계층 지원 전략으로 EAC를 채택하기도 했다. 

학교와 교사의 재량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교육현장에서는 프랑스가 가진 다양한 문화예술자산을 적극 활용한다.

(프랑스의 문화예술자산이 제국/식민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적 논의는 나도 관심이 많은 주제이지만 일단 논외로 두겠다.)

지난달만 해도 첫째는 샹젤리제에서 오페라를 보고, 둘째는 루브르에 다녀왔다.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따라 부르던 밤의 여왕 아리아를 살아있는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듣고,

그리스 신화를 배우며 마음을 설레게 했던 아프로디테를 밀로의 비너스상으로 만나는 건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었을 테다.


또한 파리에 있는 학교들 대부분은 시에서 운영하는 "Mon 1er Cinéma (나의 첫 번째 시네마)"라는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다.

매년 연령별로 선정된 영화 세 편을 가까운 동네 영화관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단체 관람할 수 있다.

덕분에 두 아이 모두 세 살 때 처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는데,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40분 남짓의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동행한 부모들이 목욕탕 의자처럼 생긴 키높이 시트를 나누어 주었고, 아이들은 그 위에 앉아 제법 의젓하게 영화 관객 노릇을 했다.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 관람 시간, Mon 1er Cinéma 


학교 밖에서 부모들이 찾아볼 수 있는 문화예술활동도 다양하다.

파리의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은 "어린 관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퐁피두 미술관의 "Cozy Visite"은 0-2세 영아들이 유모차 안에서 혹은 기어 다니며 전문 큐레이터의 전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3세부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가이드 투어와 손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아뜰리에를 제공한다.

왼쪽은 둘째가 부르델 미술관에서 만든 점토상 (메두사 머리), 오른쪽은 첫째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든 부조 (재규어였나 표범이었나?)


프랑스에서 아이들의 문화예술활동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이는 "l'éveil"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깨달음, 자각의 뜻을 갖는다.

아이들의 눈이 떠지면서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히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그림을 도장 깨기 하듯 찾아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작품과 문화활동은 우리 각자의 인생이 펼쳐지는 제한된 시공간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을 보고 이해하게 도와준다.

그 사이 자라나는 공감 능력은 한 아이를 더 나은 사람으로, 그런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을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줄 것이다.

어릴 때 예술과 문화를 폭넓고 다양하게 경험한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 한 폭을 걸어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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