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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an 15. 2024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인상적인 구절들 다섯 개


1.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가 저를 죽여주길 바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누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끔찍한 상대를 오히려 행복하게 해 줄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2. "저 역시 세상을 향한 공포, 버거움, 돈 지하운동, 여자, 학업, 생각하면 할수록 도저히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기에 그 사람의 제안에 선뜻 동의했습니다."


3. "그림 이야기가 나오면 제 눈앞에 그 마시다 만 한잔의 압생트가 아른거리면서 아아, 그 그림을 이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다, 내 재능을 믿게 하고 싶다, 하며 초조감에 몸부림치는 것이었습니다."


4.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무슨 일을 해도, 어떤 짓을 해도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부끄러움에 부끄러움을 덧칠하게 될 뿐이다."


5. "이제 아버지가 없다. 내 가슴속에서 단 한순간도 떠난 적 없던 그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가 이제는 없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이제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유난히 무거웠던 것도 다 아버지 탓이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내가 중학생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세상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일상은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 투성이었다. 당시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을 마음껏 체벌할 때였다. 도통 이해되지 않는 훈계들이 많았다. 인사를 잘해라라던가 똑바로 앉으라 라는 말부터 하면 안 되는 것, 기본 상식 이런 것들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아 따지고 물어보다 보면 나는 나쁜 아이, 반항하는 아이가 되었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 것을 어떻게 견디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부당한 폭력 (체벌이라고 불리는 그것들), 부당해 보이는 규칙 (교칙이라고 불리는 그것들),  이해되지 않지만 지켜야 하는 것들 (상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나는 어딘가가 잘못돼서 태어난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괴로울까? 아주 큰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간 죄인이 괴로울까? 그때 나는 내 삶이 더 괴롭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다. 기회가 있었다면 정말로 실행했을지도 모른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 생각은 이어졌다. 대학시절에는 누구도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사회라는 곳에 나가 또다시 부딪히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죽지 않고 살게 된 건 내가 강한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벌어진 수많은 우연들이 내가 살아나가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 실격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세상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라면서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타락시키는 우연과 마주친다. 타지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게 되고, 그러다가 나쁜 것을 소개해주는 친구를 만나며, 자신과 비슷한 여자들을 만나고, 자살을 시도하고, 불행을 겪고, 우연히 마약을 접하고, 정신병원에 가는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그는 화가로서의 열정은 꾸준히 지켜갔다. 하지만 그 끝은 결국 인간 실격.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단 한 가지다. 내 주위에는 함께 죽자는 친구라던가 마약 같은 것이 없었기에 나는 우연히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간실격의 범주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이나, 마약에 찌든 사람들, 또는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동정한다. 나도 내 옆에서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인간실격의 범주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무척이나 흡입력 있고 재미있는 소설책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고민들을 생생히 떠오르게 하며 동시에 점점 타락해 가는 주인공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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