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Chaminade "Six Pièces romantiques"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서양음악사는 대부분 남성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견고한 벽을 뚫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에 음악을 남긴 한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세실 샤미나드(Cécile Chaminade, 1857–1944)입니다.
파리에서 태어난 샤미나드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여덟 살 무렵,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고 그는 어린 소녀의 감각과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가로서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음악을 배우되, 작곡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강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공식적인 음악 교육을 받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파리 음악원(Conservatoire de Paris)은 여성에게 거의 열려 있지 않았고 (일부 수업만 들을 수 있었음) 그녀는 사적으로 몇몇 음악가에게서 배우며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끊임없이 작곡했고 피아노곡·가곡·실내악·관현악 등 400곡이 넘는 작품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그녀는 파리 음악원의 르 쿠페 교수의 후원으로 자신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살롱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이 공연은 그녀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었고 그날 이후 그녀의 이름은 점차 음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선율은 우아하고 섬세하며, 당대 프랑스 살롱 문화와도 잘 어울렸기에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역설적으로 그녀에 대한 편견의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녀의 곡을 두고 “여성적이다”, “가벼운 살롱 음악이다”라고 평가했던 것입니다. 남성 작곡가들이 웅장한 교향곡과 오페라로 ‘진지한 예술’의 상징이 되던 시절이었고 그녀의 작품은 ‘감성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격하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녀는 편견에 가득 찬 비평가들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연주 여행을 다녔고 자신의 이름으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1913년에는 여성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를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의 영예를 넘어 여성 음악가에게 닫혀 있던 문이 조금이나마 열렸음을 의미했습니다.
오페라 햄릿의 작곡가 앙브루아즈 토마는 그녀를 두고 "이 사람은 작곡을 하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인 작곡가이다. Ce n'est pas une femme compositeur, c'est un compositeur femme."라고 말했습니다. 여성이기 이전에 작곡가로, 작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을 담은 말이지요. 그녀의 음악은 세련된 화성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폄하될 수 없는 깊이를 지닙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그녀의 작품은 Six Pièces romantiques, Op. 55 6개의 낭만적 소품 작품번호 55입니다.
이 작품은 “장르곡(pièce de genre)”의 전형으로 당대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에서 사랑받았던 자연과 이국적인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습니다.
Primavera(봄): 바르카롤의 리듬과 왈츠의 감각을 결합하여 우아한 선율과 섬세한 화성으로 목가적 신선함을 보여줍니다.
La chaise à porteurs(가마): 저음의 변함없는 리듬 위에서 경쾌하게 움직이는 섬세한 행진곡입니다.
Idylle arabe(아라비안 목가): 절제된 선법적 색채와 아르페지오의 음형이 먼 이국의 분위기를 암시하며 아라비아 왈츠가 중간에 나타납니다.
Sérénade d’automne(가을의 세레나데): 부드럽게 흔들리는 선율과 보다 자유로운 장면이 번갈아 나타나 기타나 만돌린의 음색을 연상시킵니다.
Danse hindoue(힌두 무곡): Idylle arabe보다 이국적인 요소가 뚜렷하며 동양적 선율 선과 반복되는 저음 위에 최면적인 리듬이 펼쳐집니다.
Rigaudon(리고당): 가보트 특징이 강한 곡으로 대중적인 선율과 바로크 하프시코드에서 차용한 장식음으로 작품집을 마무리합니다.
이 작은 여섯 곡 속에는 샤미나드의 감성과 상상력이 가득합니다. 그녀가 그려낸 봄의 신선함, 가을의 부드러움 그리고 이국의 풍경을 함께 느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