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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컴, 울퉁불퉁한 박자 위에 춤추는 우아한 유령

W. Bolcom 'Graceful Ghost Rag 우아한 유령'

by 에리카

19세기말, 미국의 한 피아노 앞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왼손은 규칙적인 행진곡처럼 착착 걸음을 옮기는데 오른손은 그 위에서 장난스럽게 엇박자를 타며 춤을 추고 있었지요. 이 왼손의 주법은 ‘Ragtime 래그타임’이라 불렸습니다.

Maple_Leaf_Rag.png 래그타임의 제왕 스콧 조플린의 메이플 리프 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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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리듬’이라는 이름처럼 오른손의 박자는 계속 비틀리고 밀리고 흔들리지만 왼손에는 질서와 생동감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주법은 곧 미국의 거리와 살롱, 극장을 채우며 사람들의 어깨와 마음을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 뒤, 작곡가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은 이 오래된 리듬 위에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얹었습니다. 그의 작품 <Graceful Ghost Rag 우아한 유령>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며 쓴 곡입니다. 이 곡에서의 ‘유령’은 결코 음침하지 않습니다. 볼컴의 유령은 따뜻하고 품위 있는 존재로 기억의 저편에서 부드럽게 미소 짓습니다. 왼손이 차분히 리듬을 이어가면 오른손의 멜로디는 그 위를 살짝 떠다니며 흔들리지요. 때로는 슬픔처럼, 때로는 그리움처럼. 그 미묘한 울림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곡이 끝날 무렵,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 음악은 죽은 이를 애도하는 노래가 아니라, 그와 함께 춤추는 순간의 회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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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의 윌리암 볼콤 / 볼콤과 그의 아내 메조소프라노 조안 모리스


울퉁불퉁한 박자 위에서 한 아들이 아버지의 영혼과 함께 조용하고 우아하게 춤을 춥니다. 원래 피아노 독주곡으로 쓰였지만 오늘은 피아노 듀오버전으로 함께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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