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푸스틴, 나는 재즈 음악가가 아니다

N. Kapustin Sinfonietta, Op.49

by 에리카

니콜라이 카푸스틴(1937–2020)은 소련·러시아에서 활동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클래식 음악의 형식 언어에 재즈의 어휘를 결합한 독특한 작품 세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1937년 우크라이나(당시 소비에트)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그는 평생 동안 피아노 독주곡·소나타·콘체르토 등 전통적 형식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오늘 들어볼 작품은 신포니에타 Sinfonietta, Op.49로 원래 관현악을 위해 작곡되었으나 이후 카푸스틴 자신이 피아노 듀오 버전으로 편곡하였으며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악장 구성(서곡·느린 왈츠·인터메초·론도)은 클래식 소나타·교향적 구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신포니에타를 포함한 많은 카푸스틴의 작품들에서는 재즈의 리듬, 하모니, 스윙, 블루노트 등 재즈적 요소들이 분명히 들립니다. 그래서 청자들, 연주자들, 평론가들은 종종 카푸스틴을 ‘재즈+클래식의 화학적 결합’ 또는 ‘클래식 구조 속의 재즈’로 규정합니다. 그의 곡들은 즉흥 연주처럼 들릴 만큼 유려한 솔로와 재즈의 리듬을 풍부히 포함하지만 실제로 그 모든 ‘즉흥’은 악보에 정확히 기보된 작곡된 즉흥(composed improvisation)입니다.


카푸스틴은 스스로를 “I was never a jazz musician 나는 재즈 음악가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전체 문장은 이렇습니다. “I was never a jazz musician. I never tried to be a real jazz pianist… All my improvisation is written, of course.” 그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핵심은 즉흥성에 대한 태도와 작곡과 연주의 우선순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카푸스틴은 인터뷰와 여러 후기에서 자신은 즉흥연주를 즐기거나 전문으로 삼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즉흥은 내가 미리 적어두는 것(written improvisation)”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는 재즈의 즉흥(순간의 창조)이 아닌 재즈 어휘를 작곡적 도구로 사용해 정교하게 설계된 악곡을 만드는 ‘작곡가적’ 접근을 취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교육적 배경입니다. 카푸스틴은 모스크바에서 보수적 클래식 교육을 받았고 작곡·형식·대위법 등 전통적 기법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음악은 구조적으로 탄탄하고 고전적 형식(소나타·소품 형식·관현악적 배열)을 충실히 따릅니다. 재즈적 요소는 ‘재료’ 일뿐, 음악의 조직 원리는 여전히 클래식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카푸스틴이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두 세계의 장점을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창조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와 같은 클래식 피아니스트도 재즈의 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지요. 즉흥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지만 견고하게 짜인 구조 덕분에 청자는 재즈적 리듬과 화성이 주는 즐거움을 안전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카푸스틴의 작품은 이렇게 자유와 질서가 공존하는 독특한 음악적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카푸스틴의 신포니에타 중 4악장 Rondo 론도 들어보시겠습니다.


https://youtu.be/LSofEwu7Mgg?si=cX7EXz1Q9YYdST0B





아래는 2016년에 제가 연주한 카푸스틴의 피아노 트리오 전악장입니다. 티는 많이 안 나지만 둘째가 뱃속에 있어요 ㅎㅎ


N. Kapustin Trio for Violin, Cello and Piano, Op.86, No.1


https://youtu.be/spWb9dyhD3Q?si=JbcO6Ss2rS3QHcqn

1악장 Allegro molto

https://youtu.be/uZ5tujFyP58?si=0_8ds4fuuQIWUrit

2악장 Andante

https://youtu.be/-wlxvN-Z7VQ?si=Xb6ipaZK9B1UlPzb

3악장 Allero giocoso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