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aint-Saëns Danse macabre, Op.40
카미유 생상(Camille Saint-Saëns, 1835–1921)은 오페라와 교향곡, 협주곡은 물론이고 오늘날 ‘영화음악의 전신’이라 불릴 만큼 극적인 교향시들을 작곡한 프랑스의 작곡가 입니다. 특히 1874년에 작곡된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Op.40)>는 생상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장 생생하게 음악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의 바탕에는 유럽의 오래된 설화인 ‘죽음의 춤(danse macabre / Dance of Death)’이 자리합니다. 중세 말기부터 회화·문학·연극에서 반복되어 온 모티브로 핵심은 죽음(해골)이 왕·교황·귀족·평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불러내어 함께 춤추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삶의 덧없음과 신분의 평등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가 반 이상 줄어든 뒤, 사람들은 죽음을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삶과 맞닿아 있는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도시의 벽화, 수도원의 프레스코화 속에서 귀족과 농부, 성직자와 아이가 나란히 해골의 손을 잡고 춤추는 장면이 등장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지요. 전염병과 전쟁이 이어지던 시대, 이러한 시도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을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티브는 15세기 베른트 노트케(Bernt Notke)의 대작 Danse Macabre(탈린 성 니콜라스 교회), 16세기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의 목판화 연작 The Dance of Death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 작품들 속 해골은 공포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덧없음과 생의 의지를 일깨우는 ‘동반자’처럼 등장합니다. 생상은 이 이미지를 음악으로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시계가 12번 울리고, 뒤이어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등장하며 죽음이 무덤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펼쳐집니다. 이후 광란의 춤, 악마적 리듬, 장난기 섞인 스케르초풍의 전개가 이어지고 새벽의 닭 울음으로 모든 기운이 사라지며 곡은 조용히 끝을 맺습니다. 단 한 곡 안에 연극·회화·설화적 상상력이 모두 담긴 셈이지요.
오늘 들으실 피아노 듀오 버전의 <죽음의 무도>는 오케스트라의 화려함을 두 연주자의 네 손에 응축해 들려줍니다. 피아노로 재현된 리듬은 더욱 선명하게 ‘죽음의 발걸음’처럼 다가오고 교차하는 두 연주자의 호흡은 마치 해골들이 한밤중의 광장에서 얽히며 춤추는 모습처럼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강렬한 옥타브와 날카로운 음형은 전설 속 그 한밤의 광경을 그려내며 피아노라는 악기가 가진 타악적 에너지까지 더해져 오케스트라 버전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살아납니다. PIANO DUO ARCUS의 10월 31일 실황연주로 들어보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