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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May 12. 2024

너도 행복하냐? 나도 행복하다. 팜생츄어리 자연목장

- 이연재 장훈 오리온의 이야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마당을 가로지르는 돼지 한 마리. 민들레 꽃을 먹으며 햇빛을 즐기는 돼지 두 마리, 작은 조랑말과 닭들은 자유롭게 산책을 하고, 거위와 염소,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풍경. 뭔가 비현실적이지만 다들 행복해 보이는 이곳은 충북 음성의 자연목장이다.      



# 오리온의 시선

동물도, 사람도 행복한 농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11살이 된 미니피그 오리온

제 이름은 오리온입니다. 나이는 올해로 11살이 된 돼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6개월의 짧은 생을 삽니다. 물론 평균 수명은 10년이 넘지만 이 부분은 제가 말로 하기는 좀 그렇네요.

저는 똑똑한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돼지는 ‘어리석다’, ‘게으르다’라고 말하지만 제 IQ는 75~85 정도로 3~4세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니 동물 중에서는 꽤 똑똑한 편입니다. 사람을 구별하거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화장실, 잠자는 곳, 먹는 곳을 잘 구분합니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냄새나고 더럽다고요? 일반적인 축사에서는 밀집되어 살기 때문에 냄새가 날 수 있지만, 저는 꽃을 좋아하고, 풀을 즐겨 먹습니다. 건강한 사료를 먹고 충분한 공간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친구들은 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 축사에서 냄새가 나지 않지요?


그리고 저는 생각보다 뚱뚱하지는 않습니다. 성인 남성의 표준 체지방률이 10~20%, 성인 여성의 체지방률이 20~30%인 것에 비해 저는 15% 정도이니 뚱뚱하기보다는 균형 잡힌 몸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청 빠릅니다. 야생에서 자란 친구들은 100m를 9초 만에 달릴 정도로 빠르답니다. 햇빛도 좋아하고, 진흙에서 목욕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은데요? 오늘은 민들레 꽃 위주로 편식을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산책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오후에 날씨가 더워지면 진흙에서 목욕을 조금 해볼까 합니다.     

다른 곳에서 사는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밀집된 공간에서 모여 사는 친구들은 싸우고, 다치기도 해서 이빨도 제거하고, 꼬리를 자릅니다. 많은 친구들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오물과 뒤섞여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좁은 철장에서 몸을 돌릴 수조차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 눕고 배설도 같은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평생을 이렇게 사는 친구들이 우리가 아는 돼지의 99%입니다.     


우리 농장에는 토종 흑돼지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50마리도 넘는 친구들이 저처럼 풀도 먹고 햇빛도 쐬면서 매일 매일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2023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양돈농장은 가축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8대 방역 시설 설치 의무가 입법화되면서 친구들과 더는 함께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농장에서 어떠한 질병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지게 됐지만, 지난해부터 다른 친구들이 목장에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개농장에서 구조된 미니피그 릴리, 로즈, 자스민 등의 친구가 찾아왔고, 염소와 닭, 칠면조, 기러기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좁은 우리에서 살던 친구들, 지하 창고에서 혼자 3년을 살던 친구들은 이곳에 찾아와 따뜻한 햇볕을 보며, 넓은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말이 되면 가족 단위 손님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한가로이 운동장을 거닐던 우리를 보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저희와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기쁜 얼굴로 다시 돌아가곤 합니다.

저와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행복이 되는 것 같네요.   

   

# 장훈 대표의 시선

자연순환목장에서 팜 생츄어리(Sanctuary) 농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전공하고,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뭔가 전공을 살려 일을 한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은 ‘전문가’의 영역에서 점차 대중적인 영역. 누구나 핸드폰을 가지고 멋진 사진을 찍는 시대가 왔고, 일반인들의 장비 수준이 너무나 높아져서 이제는 다른 일을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목장 장훈, 이연재 대표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귀농이었습니다. 귀농 결심 후 무작정 직장을 그만두는 것보다 일을 하면서 귀농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주중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을 활용해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시골에서 축산업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축사 한 동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양돈업을 시작했습니다. 축산업을 하더라도 자연과 가까운, 사람도 행복하고, 동물도 행복한 농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케이지형 축산이 아니라 자연 방목형 축사를 준비했고, 축산과학원의 도움을 받아 토종돼지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돼지에게 먹이는 것도 돼지감자나 유기농 복숭아, 감, 칡 등 목장에서 수확한 작물의 부산물과 농장 주위의 풀, 그리고 배합사료를 직접 제조해 먹였습니다. 널찍널찍한 공간에서 자라는 돼지는 면역력이 강해서 대부분의 간단한 질병은 자연치유가 되고, 항생제 등의 동물 의약품도 사용하지 않고 건강하게 키웠습니다. 말 그대로 동물복지, 유기 축산을 실천했고, 돼지의 분뇨는 퇴비로 만들어 다시 농작물을 키우는 데 사용해, 순환하는 목장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50여 마리의 행복한 토종돼지를 키우던 자연목장은 2023년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으로 모든 양돈농장은 가축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8대 방역 시설 설치 의무화가 입법화되면서 자연목장의 사육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축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가축전염병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정부 방침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에 지난해부터 자연목장은 새롭게 팜 생츄어리(Sanctuary) 농장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위급하거나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 있던 동물이나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목장에서 사육되던 미니 피그, 염소 등이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현재 자연목장은 생츄어리 농장으로 갈 곳 없는 농장 동물의 보호소가 되고 있으며, 소규모 체험객들을 받고 있습니다. 농장 동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과도한 육식에서 벗어난 식문화로 변화하기 위해 용기 있는 한 발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 이연재 대표의 시선

우프를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우프(WWOOF,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유기농가 및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에서 하루에 반나절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전 세계 150여 국가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우프는 호스트(Host)와 우퍼(WWOOfer) 간의 교류입니다. 친환경·유기농업을 하는 농장 주를 ‘호스트’라 하고, 이곳을 방문해 일을 도와주고 귀농·귀촌 체험을 하는 사람들을 ‘우퍼’, 그리고 우퍼들이 농촌의 삶을 경험하는 활동을 ‘우핑(WWOOFing)’이라고 합니다. 우퍼는 멤버십 가입을 마치면 누구든 될 수 있으며, 호스트는 서류·방문 심사를 통과해야만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단순히 농촌일손돕기나 농활을 떠올릴 수 있지만 우프의 핵심은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는 농가의 삶에 한 발짝 들어가 그들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농촌을 넘어 지구환경까지 생각하는 봉사활동입니다.     



자연목장은 2018년부터 우프 호스트 농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여름이나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한 달에 한 팀 정도 우퍼들을 받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온 제로와 메디는 우프호스트 모임 때 만나서 함께 우핑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말해서 깜짝 놀랐는데 자연목장에서 하는 우핑이 바로 신혼여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연목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나쁜엄마’의 마지막 회에서 두 주인공이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오마주해 셀프 웨딩포토를 찍었습니다.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우퍼들이었습니다. 또한, 돼지를 너무 좋아해서 우프 하는 동안 축사 안에서 행복해하던 부부 우퍼, 그리고 가족여행으로 찾아온 벨기에 가족들 모두 기억에 남는 우퍼들입니다.


우퍼들을 통해 그 나라에 가지 않아도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동물, 식물과 교감하고, 사랑하는 많은 우퍼들이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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