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희 Oct 18. 2024

기차여행……재미있는데?

프라하 중앙역에 여유 있게 와서 전광판을 검색해 보니


예약해 두었던 레오익스프레스

100분 지연

다들 전광판만 쳐다본다. 플랫폼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예?


100분을 기다릴까 하다가

진짜 100분이 맞는 건가 싶어서 사무실을 찾아가니

프라하에서 만난 제일 이쁘고 친절한 직원이

100분 못 기다리면 취소하고 다른 기차회사 표 사라고 하면서 시간표까지 알려준다.

당장 15분 후에 기차가 있다고 하면서


그 급한 순간에 나는 취소하면 백 프로 환불이냐고 세 번 물었는데 그 친절한 사람은 세 번의 질문에도 한결같이 미소를 지으며 걱정 말라며 취소 영수증을 쥐어준다.

환불 안되면 요걸로 연락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땡큐포유어카인드니스와 미소를 날리고 바람처럼 다른 회사 창구로 뛰어간다.


‘올로모우츠 역이요. 지금 가는 거요.’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한참을 듣고 나서 실실 웃으며 왜 자기한테 묻느냐고 한다. 표는 옆에서 사라면서.

이 시키가. 진작 말하지.


다른 창구로 가니

거기 직원은 세상 무뚝뚝하게 응대하면서도 몇 번 플랫폼인지 알려줄 거 다 알려준다.

시크가 차고 넘쳐흐른다.


미친 듯이 계산하고 플랫폼 찾아

미친 듯이 뛰어서 기차 겨우 탔다.

숨이 턱 끝까지 차고 땀이 줄줄줄 난다.

헉헉헉. 그냥 100분 기다릴걸 그랬나.

아니지. 100분 후에 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땀이 비 오듯 한 중에 앉아서 정신 차려야 하는데 자리를 모르겠네.

승무원한테 표 보여주며 내 자리 어디냐고 물어보니 체코어로 뭐라 뭐라 하면서 가버린다.

따라오라는 소린 줄 알고 따라갔더니 얼탱이 없어하며 저리로 가라 한다. 저리로 가야지 뭐.


일단 짐칸에 짐부터 올리고 표를 보니 좌석이 없다.

눈치상 아무 데나 앉아도 될 것 같아서

앉으려다가 앉아있는 승객한테 물어보니

대충 아무 데나 앉으라고 한다.

자기도 아무 데나 앉았다면서.


눈치껏 레저베이션 비슷한 글자 표시된 곳 말고 다른 빈자리에 앉았다.

잘 가고 있는거지?


돌이켜보니

방금 전 20분 동안

내 인생 최고로 영어가 잘 들리고 잘 말했다.


100분 지연 덕에 한바탕 하고 났더니

온몸에 활력이 돈다.

이런 상황이면 말 한마디 못할 줄 날았더니 웬 걸.

영희 좀 하네.



아. 뛰었더니 배고프다.

아까 산 빵 쪼가리 먹어야지.

재미있네. 기차여행.




매거진의 이전글 재즈 공연 브레이크 타임에 쓰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