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봐야 할 것은 접어두고
아침 댓바람부터 길을 나선다.
카페 자허에 가 보고 싶었는데 오픈런이 아니면 줄을 오래 서야 한다는 말에 아직 문 열지 않은 카페데멜로 향했다. 도착하니 사람이 없어서 일빠로 가게 생겼지만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자허로 냅다 뛰었다. 줄이 길면 돌아올 심산이었다. 같은 이름의 자허토르테라도 나는 자허에 가서 자허토르테를 먹어보고 싶었다.
앞에 두 팀이 있다.
기뻤다. 금방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가면 좋은 자리 안 줄까 봐 내심 신경이 쓰였는데 씨씨의 초상화 바로 아래 정중앙 가장 안 쪽, 내 기준으로 아주 좋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2층 창가가 제일 좋다고 합니다.)
고전적인 분위기와 음악, 소곤거리는 외국어, 붉은 벽과 반짝이는 금박이 주는 분위기에 내 빨간 카디건은 정말 멋진 선택이었다.
한번쯤은 200년이 다 된, 빈에있는 이 카페에서 아주 우아한 사람인듯이 비엔나커피를 즐기고 싶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레오폴트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곧 레오폴트 전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빈 1900은 빈에서 즐기고 싶었다.
사실 빈에는 멋진 미술관이 많아서 잘 선택해서 가야 할 것 같았다. 꼭 가야 하는 곳이라는 미술사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벨베데레에서 본 클림트와 에곤실레, 그리고 빈 1900의 주역들을 더 알고 싶어서 어제 제체시온을 갔고, 그 연장선에서 오늘 레오폴트를 가기로 했다.
레오폴트미술관은 정말 기대이상이었다.
클림트와 에곤실레 작품이 많다는 것만 알고 갔는데 빈 1900의 주역들의 작품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고 관람 순서도 안내되어 있어 좋았다. 몰랐던 예술가도 알게 되고 몰랐던 내 취향도 알게 된 것 같다.
벨베데레에서 보았던 고전적인 바로크시대의 가족화를 보면 당시의 부와 명성을 참 멋지게 그려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작품은 내 눈에는 구도를 잘 잡고 찍은 이쁜 사진 같다. 나는 보기에 어떠하든지 내면이 드러난 그림이 더 끌리고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이쁜 얼굴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보이는 얼굴로. 그래서 보기에 좋은 얼굴이 아닐지라도 그런 것에는 감정을 낭비하지 않고.
설령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거나 잠잠하거나 피하고 싶은 상황의 내 모습이라도, 중요한 건 나를 속이지 않고 사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지 그게 나라면 나 자신이 드러나는 당당하고 깊이 있는 인생, 나는 그렇게 살고 싶어 졌다.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나는 미술관을 나섰다.
길가의 나무도 사람도 웃음소리도
모두 나를 응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