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칸트로위츠라는 기자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뉴스 매체인 <버즈피드>의 선임 기자인데, 세계에서 기사가 가장 많이 인용되는 ‘10대 IT 전문기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첫 저서인 <올웨이즈 데이원>을 쓰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면서 기업 내부자들과 무려 130회 이상 인터뷰를 했다지요.
그는 인공지능의 ‘검은 얼굴’과 인공지능으로 인한 ‘유토피아’를 상정하는 등 상충하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검은 얼굴’이란 인공지능이 가진 어두운 양면성, 예컨대 자동화로 인한 노동 상실, 프라이버시 침해, 알고리즘 편향, 디지털 격차 등을 가리킵니다. 그의 저서에서는 기술 기업의 힘과 그에 따르는 위험·독점·사회적 영향 등이 언급되었는데, 이 책을 평가하는 리뷰에서는 “알렉스 칸트로위츠는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낙관적 태도를 잃지 않는다”라고 평가함으로써 ‘검은 얼굴과’ ‘유토피아’를 절충하였습니다.
‘유토피아’라는 개념은 기술이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인간의 창의성 등이 확대되는 미래상을 시사합니다. 즉 AI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가능하게 한다는 기대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지요. 유토피아를 강조하는 그는 ‘항상 혁신하며 더 나은 생활을 만든다’라는 그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유토피아적 변화를 약속하지만 동시에 검은 얼굴이 존재한다면 이 둘은 분명 긴장 관계입니다. 즉 유토피아라는 이상이 실현될 수 있으려면 많은 사회적·윤리적·경제적 문제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기술로 인해 노동이 사라진다 해도, 누구에게 그 변화가 돌아가는가?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동화된 세계에서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이런 질문들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유토피아적 미래와 기술이 던지는 그림자는 서로 충돌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이 둘은 온전히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 일 수도 있습니다. 즉 유토피아적 미래가 가능해지려면 검은 얼굴을 직시하고, 제도나 가치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기술 혁신만으로 자동으로 유토피아가 오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 편향, 상실 등 기술의 어두운 면을 해결하려는 주체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알렉스 칸트로위츠의 주장을 접하면서, 인공지능의 검은 얼굴은 기술이 가져오는 위험과 불안을 의미한다면 이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약속하면서도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그림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해방하고 여가나 창의성의 장을 여는 이상적인 미래상을 지킨다면, 이 역시 그저 낙관만으로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둘은 충돌할 수도 있지만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유토피아적 비전을 갖되 검은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제도적 대응을 해나가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여기에도 양면성이 존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