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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에 대한 성경적 해석

by 염홍철


염홍철의 아침단상 655

기후 위기에 대한 성경적 해석


어제, 대설(大雪)을 맞아 “눈이 내리지 않는 대설은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시간 위에 군림해 온 것에 대한 징벌의 상징이 아닌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때 최근 기후 위기가 자연적인 절기와 현실이 분리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오늘은 기후 위기를 자연에 가한 행위가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윤리적 또는 문명사적 심판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에 대해 탐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는 자연의 붕괴가 인간의 도덕적 붕괴에 대한 응답으로 등장하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후 위기 해석의 신학적 토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먼저,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은 전통적으로 종말의 상징적 언어로 읽혀왔습니다. 그러나 그 재난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오늘의 기후 위기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에는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라고 쓰여 있고, 요한 계시록 16장에는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들은 오늘날 해양 생태계의 붕괴, 해수 온도의 상승, 살인적인 폭염이라는 현실과 거의 동일한 이미지로 겹치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은 이를 ‘천상으로부터의 형벌’이라는 신학적 언어로 묘사했고, 현대 과학은 ‘산업 문명에 의한 온실가스 축적’이라는 물리적 인과로 설명할 뿐입니다. 이렇게 언어만 다를 뿐 구조는 동일합니다.


성경에서 중요하게 제기한 것은 재앙 그 자체가 아니라 재앙을 불러온 인간의 태도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재난은 무작위적 재해가 아니라 탐욕·폭력·교만에 의해 파괴된 피조 세계가 인간에게 되받아치는 구조적 결과로 묘사됩니다. 오늘의 기후 위기 또한 바로 이러한 ‘되돌아옴’의 과정에 있는 것이지요.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을 통해 기후 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도덕적·신학적 위기로 공식 규정했습니다. 이 문언에서 교황은, “땅은 우리가 저지른 학대에 대해 신음하고 있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무대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심판하는 증언자가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기후 위기는 흔히 ‘자연의 복수’로 표현되지만, 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더욱 정확히 ‘인류 스스로에게 내린 자기 심판’에 가깝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재앙도 본질적으로는 하늘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질서 붕괴의 귀환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과학자만의 경고가 아니라 이것은 문명 전체를 향한 윤리적 보고서이며 동시에 현대판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는 핵심 메시지는, 종말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오랫동안 쌓아 올린 선택들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스스로 도래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기후 위기는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죄가 돌아온, 이른바 ‘21세기의 새로운 원죄’이며 우리는 지금 요한계시록이 예언한 문명 붕괴의 구조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원죄라는 개념은 단일한 개인의 죄가 아니라 문명 전체가 집단적으로 저지른 구조적인 죄라는 점에서 기존의 원죄 개념을 현대적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후 위기는 자연을 무한한 소유물로 착각한 인간의 오만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 오염이 아니라 신의 창조 질서를 인간이 구조적으로 위반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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