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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Apr 20. 2024

두(Do)드릴테니 열어주세요.

비트코인, 드림

'번쩍'


 온종일 마음을 쥐어짜던 불안감(alarm)이 자명종시계(alarm)가 되어 내 눈꺼풀을 무겁게 들어 올렸다. 힘겨운 신음 소리와 함께 어둠을 뒤적거렸다. 가늘게 뜬 눈으로 핸드폰을 집어 보니 화면 속 시계는 새벽 1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든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었다. 죄 없는 수면장애를 괜시리 탓해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가락은 김유신 장군에게 목 잘린 말의 전과(前科)를 충실히도 따르려는 듯 자동화 기계처럼 가상화폐 거래소 어플을 찾아 작동했다. 설렘과 초조함 속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어플을 꾸..욱 하고 눌렀다. 제길...


○○코인 : 현재 시세 -28%(총평가손익-89%)


 대한민국에 코인 열풍이 매섭게 휘몰아치면서 남녀노소할 것 없이 비트코인드림을 꿈꾸며 광란의 태풍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코인은 한낱 실체 없는 사기극이라고 생각했었다. 취업난 시대에 안정된 직장을 얻고 꼬박 나오는 월급에 그저 감사했다. 돈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주택 대출빚을 꼬박 갚아나가며 32평대 아파트 속 내 지분의 평수를 차츰 늘려나갔다. 하지만 투자에 일가견이 있는 대학동기 A와의 저녁 식사 자리는 나를 자본주의의 가련한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A는 월급쟁이의 박봉, 대출빚, 자녀 교육비, 외벌이의 재테크 필요성 등 보험판매원보다 더 유려한 언변과 현실적인 근거로 코인 열풍에 동참해야한다고 침을 튀겼다. 처음엔 실체 없는 화페에 투자를 하다니, 무슨 시덥잖은 소리냐고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대쪽 같이 버티던 나의 지조가 무너진 것은 A의 코인 계좌를 확인하고 나서부터였다. 나처럼 월급쟁이인 A는 코인으로 연봉에 버금가는 수익을 얻는 중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곧 계급이라는 말이 얼핏 떠올랐다.


 결국 난 보통의 삶에 작별을 고하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소시민으로 사상전향을 했다. 매달 아내에게 용돈을 타서 써오던 입장이라 내 지갑 사정은 넉넉지 않았다. 아내가 알지 못하게 은밀히 신용대출을 알아봤다. 은행은 정규직인 나의 정기적인 월급에 큰 매력을 느꼈는지 클릭 몇 번으로 일년치 연봉을 넘어서는 거액을 내 계좌로 순식간에 넣어 주었다. 은행돈이긴 하지만 자본이란 무기도 생겼고 코인 전장에 호기롭게 뛰어들었다.


 어느 종목이든 사놓기만 하면 돈이 복사된다는 호시절은 내가 투자에 뛰어든 이후 귀신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무능한 장수의 무모한 도전은 무참히도 무너져 내렸다. 상한가와 하한가의 제한이 없는, 24시간의 탐욕과 혼돈의 블랙홀! 그 끝없는 어둠의 구렁텅이 속으로 나의 자본과 영혼은 조금씩 몸집을 불려가며 잠식되고 있었다.


 이전 대출금을 또 다른 대출로 막는 대출깡이 반복되었다. 결혼기념일 선물을 사기 위해 몇십만 원의 카드 결제에도 손이 덜덜 떨렸던 소시민(소심인)은 몇천만 원의 손실에도 의연한, 끓는 물 속 대범한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언젠간 대박이 날 거라는 허풍 섞인 자기 위로로 매일을 버텨나갔다. 아내가 알게 되면 거품 물고 쓰러질 만큼 날이 갈수록 빚은 쌓여만 갔다. 일상이 파괴되고 두 발은 힘이 풀려 걷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TV에서 송출되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남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나약하고 이기적인 나의 본성은 급기야 A에 대한 원망으로까지 마수(魔手)를 뻗쳐 나갔다. A가 코인을 소개해주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건 A 때문이다! 비겁한 책임 전가로 나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A만 아니었다면...A만 아니었으면...


 술에 취해 숙면을 취했던 어느 날 밤이었던가. 몽롱한 의식의 틈으로 지금의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인 나를 저만치서 바라보고 있었다. 하굣길, 과거의 나는 급우들이 동그랗게 진을 치며 웅성거리고 있는 현장으로 호기심 가득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탐욕에 가득 찬 동심들이 황금빛 대왕 잉어를 뽑기 위해 노상 리어카 앞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친한 친구 녀석이 대왕 설탕칼을 뽑자 여기저기서 “우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녀석은 망나니가 들었을 법한 처형 집행검을 들고 군종 속을 활보했다. 동심의 시선에서 그 녀석은, 아니 그 녀석이 뽑은 대왕 설탕칼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리어카 진열대엔 1등 상품인 황금빛 대왕 잉어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날 향해 금빛 지느러미를 팔딱거리는 것 같았다. 처형 집행검을 든 망나니는 그새 처형 대상을 발견했는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곤 설탕같이 달콤한 목소리로


"너도 한 번 뽑아봐."


 망나니의 권유는 마치 달고나처럼 내 마음을 달콤하게 녹였다. 망나니의 황금빛 찬란한 칼이 부러웠다. 나는 전설의 잉어를 낚는 강태공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친구들의 환호를 등에 업고 지갑을 열었다. 장면이 전환되었다. 나는 어버이날 부모님 선물을 사드리기 위해 애지중지 키워 왔던 빨간 복돼지의 배를 가르고 있었다. 장면이 다시 전환되었다. 나는 장롱 속 엄마의 지갑을 몰래 열고 있었다. 황금 잉어가 심어준 욕망의 도파민은 동심으로 위장한 나의 도덕성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다. 망나니의 황금빛 대왕 설탕칼은 결국 나의 양심과 도덕성을 처형시킨 것이었다. 도둑질이 엄마에게 처음 적발된 그 날, 어린 나는 무릎을 꿇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빌고 있었다.


"친구가 뽑기하자고 꼬셨어요."


 이 모든 광경을 쭉 지켜보던 지금의 나는 어린 녀석이 저 때부터 비언어적, 준언어적 표현의 의미 전달 효과를 깨우쳤단 사실이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내 수치심의 수치가 극도로 올라가며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내 구차한 변명을 뭉갠 과거 속 엄마의 말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친구 핑계 대지 마!!"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친구 관계, 대학, 취업, 결혼 등 셀 수 없는 선택의 갈림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한 방향을 결정하고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 언제나 우릴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게 우리 인간의 숙명이라면 내가 하는 선택과 결정은 분명 지혜롭고 현명해야 하리라. 내 실패를 A에게 떠넘기듯 전가한 나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진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의 처절한 자아 성찰이 이어졌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늘 반복한다.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남은 현재와 미래를 실패한 과거 속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여러 날 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생각을 정리했다. 날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욕심과 실수들에 대한 절교를 결심했다. 비트코인드림은 비싼 인생 수업료를 낸 셈 치고 과감히 접기로 했다. 탐욕의 바람을 넣어가며 위태하게 부풀려 왔던 욕망의 풍선이 결국 터져 버린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비트코인드림이 아니라 일단 아내를 향한 엎드림이다. 가지고 있던 코인을 모두 매도하니 대출금의 딱 10분의 1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개운하게 말아먹었지만 내 마음은 한결 개운해졌다.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눌렀다. 기계 너머에선 육아에 지친 아내의 노곤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당신한테 고백할 게 있다는 나의 멘트에, 아내는 20대의 끝자락에서 받았던 나의 어설픈 사랑 고백과는 분명 다른 결을 느꼈으리라.


 통화를 마친 후 돌아가는 퇴근길의 공기가 상쾌하고 발걸음은 소풍처럼 가볍다. 매일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동네 서점이 보인다. 진열대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책들이 그날따라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가를 꿈꾸며 매일 습작 수준도 안 되는 소설을 써대었던,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미치도록 글을 배우고 소설을 쓰고 싶었던, 어릴 적 그 뜨거운 열정과 꿈이 불현듯 떠오른다. 글을 사랑하고 작가를 동경했던 미완의 소년. 매일 지나쳤던 책방인데 왜 지금에서야 낡아 빠진 기억의 장롱 속에서 쾌쾌하게 먼지만 쌓여 가던 그 꿈이 불현듯 생각나는 것일까?


 이젠 남의 등떠밂에 의존하지 않고, 무엇이든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뇌리를 강하게 때리며 스쳐 지나간다. 장롱 속 꿈의 원석을 꺼내서 보석이 될 때까지 마구마구 두드려 보라고 내면의 목소리는 목이 터져라 외쳐댄다. 갑자기 희열의 엔트로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그래, 엎드림 다음에는 두드림이다. 생각의 결심이 서자 어서 집에 가서 현관문을 마구 두드리고 싶다는 충동이 불 뿜듯 일어나면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현실에 엎드리지 말고 꿈을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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