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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Apr 21. 2024

팥붕, 슈붕보다 따뜻한 엄마의 150원짜리 붕어빵

마음의 붕어빵을 굽다.

 서늘한 바람이 제법 싸늘한 바람으로 바뀌어 골목 어귀를 매섭게 파고든다. 가을의 끝자락이 겨울의 첫 자락을 향해 바통 터치를 외치며 노크를 해대면 동네마다 행인들의 콧속을 깊숙이 파고드는 향긋한 추억의 냄새가 달콤하게 찾아온다. 개업 알림 없이 몰래 온 손님처럼 반갑게 등장하는 거리의 붕어빵 장수.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붕어빵은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에게 따뜻한 추억을 한 웅큼 안겨주는 따스한 선물과도 같다.    

 

 요즘은 중2병이라고 일컫는 나의 사춘기 시절, 아버지께서는 빚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집안의 경제 형편은 순식간에 크게 기울었다. 우체국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은 고스란히 남의 빚을 갚는 데로 흘러 들어갔고, 어떻게든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어머니께서는 언덕배기 육교 바로 밑에 작은 구멍가게를 여셨다. 대형 마트 안에 딸린 화장실보다 작은, 그야말로 코딱지만 한 가게였다. 중학교 등굣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학생들의 코 묻은 돈이 주요 수입원이었던 코딱지 가게.     


 어머니의 구멍가게에도 어느덧 겨울이 찾아왔다. 철부지 중학생 소년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공짜 과자를 얻어먹겠다는 기대감을 질소 과자처럼 부풀리며 어머니의 구멍가게를 찾았다. 가게 안에서 어머니는 정체 모를 낡은 고철 덩어리를 검정 기름때가 점점 더해져 가는 헝겊으로 정성스레 닦고 계셨다. 자세히 보니 붕어빵을 굽는 틀이었다. 알고 보니 전에 붕어빵 장사를 하셨던 분께 부탁해 싼값을 지불하고 붕어빵 틀을 넘겨받으신 것이다. 붕어빵 틀의 전 주인에게 붕어빵 반죽이나 불의 조절 같은 조리법도 약식으로 인수·인계받으셨다.


 어머니는 내일부터 가게 안에서 붕어빵을 구워서 파실 거라고 하셨다. 철없는 사춘기 소년은 어머니가 붕어빵 장수가 된다는 사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 기뻤다. 이젠 공짜 붕어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배부른 기대감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파시는 붕어빵 가격은 시중보다 50원이 싼, 한 마리에 150원이었다. 어머니께선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연습을 해 보신다고 시범적으로 붕어빵을 몇 개 구워주셨다. 서툰 솜씨 때문인지 군데군데 화상을 입은 기형적인 붕어빵이 완성되었지만 맛은 환상적이었고 붕어빵은 참 따뜻했다.      


 어머니가 붕어빵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첫 날, 하교하자마자 삶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처럼 어머니의 구멍가게로 발걸음 가볍게 행군했다.(언덕배기 올라가는 길은 종아리에 알이 박힐 만큼 늘 행군이었다.) 가게 앞은 벌써부터 붕어빵을 기다리는 손님 몇몇이 옹기종기 모여 손바람을 호호 불어대고 있었다. 어머니는 서툰 손놀림으로 손님들의 붕어빵 수요를 맞추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구멍가게 안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파셨기 때문에 구멍가게 손님 물건값 계산하랴, 붕어빵 기계 돌리시랴 어머니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 보이셨다.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입대 후 첫 휴가 나온 늠름한 아들을 맞이하듯 어머니는 환한 기색으로 나를 반기셨다.     


“아들, 잘왔어. 가게 손님 계산하는 일 좀 도와줘. 엄마가 손이 부족하네.”     


 어머니는 덩치만 컸지, 전혀 늠름하지 않은 아들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구조 요청을 보내셨다. 철없는 아들은 순간 계산대 앞에 서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친구들이라도 만나면 어떡하지? 분명 코딱지만한 가게라고 놀려댈 텐데…….’ 어머니의 작은 구멍가게는 순간 부끄러움이 되어 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결국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을 사춘기라는 철없는 이유를 명분삼아 모질게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싫어, 친구 만나러 갈래.”     


 난 몰래 물건을 훔치다 걸린 도둑놈처럼, 쫓기듯 구멍가게를 빠르게 빠져나왔다. 정신없이 몇 걸음을 도망쳐 나오다가 문득 가게 쪽을 뒤돌아봤다. 어머니는 붕어빵 굽는 기계의 열기 탓인지, 얼굴에 땀이 흥건히 젖으신 채로 한 개에 150원짜리 붕어빵을 힘겹게 만들고 계셨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지갑이 얇은 코흘리개들에게도 행복한 포만감을 주었던 붕어빵. 갓 구워져 나온 뜨근뜨근한 붕어빵을 두 손에 고이 쥐고 머리부터 먹어야 하나, 꼬리부터 먹어야 하나, 같은 황홀한 동심의 딜레마는 이젠 과거 속에 갇혀 버린 것 같다. 이제는 슈븅(슈크림 붕어빵)이니, 팥붕(팥붕어빵)이니 같은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딜레마가 붕어빵을 지배하는 트렌드 혹은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다.      


 가을이 저물고 있는 노을빛의 퇴근길, 어느샌가 아파트 앞 골목 어귀에 붕어빵을 굽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붕어빵을 굽는 냄새는 골목 여기저기에서 붕어빵 개업 소식을 행인들에게 바쁘게 알리고 있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붕어빵의 달콤하고도 중독적인 냄새는 여전히 과거 속 냄새 그대로 변치 않았다. 붕어빵 냄새를 맡으니 아들내미들의 포동포동한 먹성이 떠올랐다. 지갑 속에 현금이 얼마나 있나 확인하고 붕어빵 점포 앞으로 또각또각 구둣발을  내디뎠다.     


 검정, 빨강 보드마카로 정성스럽게 써진 가격표를 보니 3개에 2,000원이라는 문구에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미리 온 손님들이 꽤 있는 바람에 붕어빵 주문을 미리 넣고 기약 없는 대기를 타야 했다. 하릴없이 스마트폰 속 뉴스거리를 뒤적거리다가 철컹 철컹 붕어빵 틀 돌아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뺏겼다. 붕어빵 장수가 반죽을 계량대로 틀 위에 풀고, 그 위에 팥앙금이나 슈크림을 살포시 놓은 후 다시 반죽으로 덮는 모습을 수족관 물고기 구경하듯 지켜보고 있노라니 예전 어머니께서 서툴게 붕어빵을 구우셨던 모습이 플래시백처럼 떠올랐다.      


 붕어빵 가격은 해가 갈수록 오르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인생은 서서히 막바지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편하게 노년을 보내셔야 하는 때이지만, 어머니께선 서울의 한 작은 병원에서 청소 노동을 하고 계셨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는 확고한 사상을 가지고 계셨기에 노환이 와도 고된 밀걸레질과 빗자루질을 쉬지 않고 계신 것이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어머니. 가정을 위해 육체노동벌이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신 어머니……. 일생을 ‘여성 김○○’이 아닌 ‘어머니’란 이름으로 힘겨운 삶을 지탱해 오셨다.     


 매운 연기를 마신 것도 아닌데 어느새 눈가에 침침한 눈물이 고였다. 붕어빵은 내 안에 존재하는 아련한 슬픔의 근원을 끄집어내었다. 드디어 주문한 붕어빵이 출고되었다. 서둘러 눈물을 훔친 후 붕어빵 장수에게 갓 만들어진 붕어빵 한 봉지를 건네받았다. 붕어빵 봉지에서 전해지는 뜨끈한 열기가 찬 공기에 얼어버린 내 차가운 손을 난로처럼 감싸주었다. 어머니의 부탁을 뿌리쳤던 나의 철없고 냉정했던 과거의 한 장면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한 손으로 붕어빵 봉지를 간신히 든 채 남아 있는 한 손으론 핸드폰 통화 버튼을 무겁게 눌렀다. 평소 자주 연락을 안 드렸기에 통화가 연결되는 동안 머릿속으론 어색한 상념이 지나갔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통화가 덜컥 연결되었다. ‘아들’이라는 반가움 가득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푸근하게 전해져 온다.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의미 없는 헛기침을 뻘쭘하게 내뱉은 후에 무뚝뚝한 아들은 어머니에게 부끄러운 안부를 물었다.      


“흠흠, 엄마. 식사는? 네네. 전 이제 퇴근하러 가서 먹으려구요. 서울 날씨는 많이 춥지요? 네. 여기는 아직 춥지는 않아요. 네. 옷 따뜻하게 잘 입고 다녀요. 걱정마세요. 네네. 애들은 잘 커요. 네네. 저나 애들이나 아픈 데 없구요. 그럼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네네. 끊을게요.”     


 결국 오늘도 제대로 된 사랑 고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는 가장이 된 철없는 아들이 아직도 걱정되시나보다. 엄마가 만들어 준 붕어빵, 참 따뜻하고 달콤했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무뚝뚝하고 철없는 아들은 사랑스런 두 아들이 식은 붕어빵을 먹을까봐 아직 옅은 김이 남아 있는 붕어빵 봉지를 외투 속에 고이 감싸고 귀갓길을 서둘렀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붕어빵의 온기는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따스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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