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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May 05. 2024

전 사실 사기 전과 24범의 범죄자입니다.

밀린 채무를 변제하지 못했다.

 전 사실 사기 전과 24범의 범죄자였습니다. 출소하여 완전한 자유를 얻은 지는 비교적 최근입니다. 지금 이 시간 제 지난 과오 낱낱이 자백하고자 부끄럽지만 참회의 펜을 무겁게 들었습니다작가의 꿈을 간절히 염원했던 미완의 문학 소년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세속적인 현실의 풍조동조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에게 닿아 달라는 꿈과의 약속을 꾸깃꾸깃 구겨버린 후 조만간 다가가겠다는 사탕발림으로 계속 꿈에게 사기를 쳐왔습니다. 성인이 되자마자 360타락해 버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꿈은 착잡한 심정을 무거운 한숨에 담아 제발 정신 좀 차리라며 절 다그쳤습니다.

 

 "지금껏 너의 삶을 힘겹게 지탱해 왔던 건 내 덕분이야. 오직 날 바라보며 살아오지 않았니? 네가 존경하는 작가가 교수로 계시는 서울 소재 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잖아. 그 대학교가 요구하는 수능 점수가 높다 보니 매일 자정을 넘겨 가며 미친 듯이 수능 공부에 매진했잖아. 바쁜 수험 생활 와중에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미래의 청사진을 행복하게 그렸었잖아. 따분하기만 한 수학 시간에 감히 선생님 몰래 소설을 쓰다가 발각되어 크게 혼난 적이 있었잖아. 선생님한테 맞아 죽을 각오까지 하며 수학보다 문학을 사랑했던 너의 삶은 온통 작가가 되겠다는 무지갯빛 꿈으로 가득 찼었잖아. 내가 네 삶의 수레바퀴가 되어 주었잖아. 왜 스스로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 있니? 이제 와서 날 버리겠다고?  이 말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넌 나한테 큰 빚이 있어. 어서 변제해. 빨리 날 찾아오라고."


 "미안, 나 이제 막 사회생활 시작했잖아. 적응할 시간이 좀 필요해. 조금만 기다려줘."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하는데? 너 설마 날 잊은 건 아니겠지?


 "내가 널 어찌 잊겠니. 꼭 만나러 갈게."


 꿈을 잊지 않았다는, 금방 다가가겠다는 약속은 모두 새빨간 거짓이었습니다. 해를 넘길수록 꿈과의 약속은 희미해졌고, 꿈의 농도도 점점 옅어지며 전 계속 꿈에게 사기 행각을 펼쳤습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꿈은 채무자를 쫓는 채권자처럼 꼬박 찾아와 변제 독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 그때마다 꿈을 회피하며 멀리 도망 다니기 바빴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라는 꿈의 절규를 못 들은 척하며 죄질 무거운 기망 행각을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무심히 흘러 보내다 보니 저는 일 년, 일 년의 귀한 시간을 낭비한 죄, 꿈에게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죄로 인해 마침내 사기 전과 24범이 되어 있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던 소년의 양손엔 이젠 책과 펜이 아닌, 현실이 채워놓은 환락의 수갑이 꽁꽁 묶여 있었습니다.


 꿈에게 채무를 변제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기까지 무려 24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냉혹한 현실의 발길질에 넘어져 피를 철철 흘려보니 그제야 꿈이 제 상처를 치유해 주는 소독약임을 깨달았습니다. 사기 전과 24범의 범죄자였지만, 꿈은 아무렇지 않다며, 밀린 채무는 일절 받지 않겠다며 절 회생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절 구속하고 있던 환락의 수갑을 손수 풀어주더니 흥분의 도파민 주사를 제 가슴에 살포시 놓아주었습니다.


 약효가 사라지기 전에 개과천선한 제 모습을 꿈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꿈을 잊고 세월을 허비한 죄로 무려 24년 동안 환락의 수갑에 꽁꽁 묶인 채 현실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감옥문을 열고 수갑을 풀어주는 꿈의 손길이 참으로 부드럽고  따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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