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일 수도 있다구요?
난임병원에서 시험관 할 거 아니면 꺼지라는 (식의) 말을 듣고 찾아간 동네 산부인과 원장은 공감능력이 뛰어났다. 남편 검사결과 정상정자 비율이 1%가 안 되구요...근데 저는 시험관 생각이 없구...어쩌구저쩌구 상황을 설명하자 자연임신 확률이 낮지만 시도해보자고 했다. 앞으로 매달 배란초음파를 보며 정확한 날짜를 받아보자고. 원래는 산부인과에서 말하는 '숙제'라는 단어가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나도...이제 숙제를 받아서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난임병원에서 거절당한 나팔관조영술도 별 말 없이 해주었다. 다만 비급여인 초음파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나팔관조영초음파 결과는 2년 전 난임병원에서 받은 것과 동일했다. 양쪽 다 막힘없이 뻥 뚫려있어 문제 없다는 것. 조영제 넣는 고통이 아직도 생생해서 엄청나게 긴장을 했는데 2년 전만큼 아프지 않고 빨리 끝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괜히 23만원짜리 검사를 했다는 후회도 들었다.(비슷한 상황의 지인 부부가 나팔관조영술 후 바로 자연임신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살짝 기대를 했었다.)
그외 초음파에서 발견한 의외의 이슈는 내가 다낭성난소증후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 정상에 생리주기도 정확하니 확실히 다낭성이다! 라고 진단할 수는 없지만, 다낭성난소의 경우 무배란월경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배란유도제와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아야 할 수도 있다고. 그리고 난임센터에서 난소나이가 20대 초반으로 매우 어리다고 했던 것도 다낭성난소증후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내 AMH수치는 8이 넘게 나오는데 20대 초반 평균치가 6이라고...또 LH호르몬 수치가 높아 배란테스트기가 항상 두줄로 나오는 등 정확하지 않을 거라고 했고 그 말이 딱 맞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니. 온전히 남편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난임에 내 책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호르몬제 부작용을 심하게 겪는 지인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저 짓은 못하겠다 싶어 시험관 시술을 포기한 것도 있었는데, 자연임신을 시도하면서도 호르몬제를 투여해야 한다니 앞이 막막했다. 어차피 호르몬 주사를 맞을 거면 차라리 가능성 높은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초음파 결과 왼쪽 난소에서는 배란이 되지 않았고 오른쪽에서만 난포 하나가 보인다고 했다. 아직 2cm가 되지 않았고 자라는 속도가 더딘 것 같다고. 내가 이렇게 하나밖에 없어도 정상인가요? 하니 그렇다고 했다. 그럼 단 하나의 난포가 제대로 성숙해야 한다는 건데 그럴 가능성은 얼마나 있을까. 원장은 주말 동안 숙제(!)를 하고 3일 뒤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자고 했다. 주사를 맞고 싶지 않으면 3일 뒤에 올 필요 없고 한 5일 뒤에 와서 초음파를 또 보면 된다고. 난임병원에서처럼 '반드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식이 아니어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결국 결정은 내 몫이다. 누구한테 떠넘기거나 탓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100일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한테 이런 얘길 하니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한 달 한 달이 소중하다고, 째깍째깍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고. 한 달 정도는 호르몬을 건드리지 않고 내가 배란이 제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 정말 다낭성이 맞는지 한번 지켜보고 싶었는데 친구 말을 들으니 또 마음이 조급해졌다. 심지어 오늘 또! 친구 한 명이 '임밍아웃'을 했다.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닌데, 주변에 임신을 계획한 친구들은 모두 몇 달도 되지 않아 척척 성공을 한다. 난임으로 속끓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아, 이 조급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성격이 팔자인지라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조급증이 도졌다. 목표를 세우면 불도저처럼 달려서 꼭 이뤄내야 한다. 그런데 난임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이걸 정말 원하는 게 맞는지 잠시 멈춰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회사에 역대급 이슈가 터져 숨만 쉬어도 하루하루가 삭제되는 상황에서, 생리주기는 한달이 아니라 일주일만에 들이닥치는 것처럼 빨리 정자를 내놓으라고(??!!) 난리다. 친구 말처럼, 째깍째깍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이번 달에 배란주사를 맞지 않으면 다음 달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까? 마치 감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개인투자자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