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igma Dec 31. 2024

2024년의 인생 교훈, 쉿! 변화의 숨겨진 법칙 공개

성장의 핵심 열쇠, 궁금하지 않으신지?

2024년의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올해는 필자의 생각이 변화한 해로서 중요한 교훈을 얻은 해였다.

필자의 자의식과잉이 깨지고, 필자가 가진 욕구의 이름을 찾았다.



나만 알고 싶지만! 복잡한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해준 이 깨달음을 쉽고 간단히 나눠보고자 한다.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단 하나의 정답으로 정의할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모든 상황은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 그리고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슬림 문화에서는 하루 5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종교적 질서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마치 억압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우리는 그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낯선 것을 억압이라 판단했을 뿐, 그들에겐 중요한 일상일 수 있다.

더 쉬운 사례를 들어보겠다.

누군가 나를 쳐다본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단순히 쳐다본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를 호감의 신호로, 또 다른 사람은 시비를 거는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이 모든 해석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추가로 덧붙인 생각일 뿐이지, 실제로는 진실과 다를 수 있다.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 무언가를 해석하려면, 그 행동이 반복되거나 특별한 맥락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사실과 해석을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때가 있다. 그 이름, 자의식 과잉.

내 귀에 도청장치 같은.

자의식 과잉으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무리한 해석을 하게 된다. 결국 내가 내린 판단이 진실이 아니라, 어쩌면 단면만 보고 내린 오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어림잡아 판단한다. 과정을 빼먹은 채.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흥미로운 연구 사례가 있다. 치타를 미어캣과 함께 키웠더니, 그 치타는 미어캣처럼 행동했다. 호랑이가 호랑이 가죽을 입힌 돼지와 함께 자랐더니, 호랑이는 그 돼지를 잡아먹지 못했다. 왜 그럴까? 환경과 경험이 이들의 행동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익숙한 사고의 길을 만들어낸다(뉴런 신경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서도 이 익숙한 길을 따라가려 한다. 사람들이 익숙한 사고방식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효율성.

이런 효율성은 우리가 쉽게 판단하도록 도와주지만, 때로는 왜곡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익숙함에 길들여져 있어 그 왜곡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자신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니까.

뭔지 모를 상황이 반복된다면, 스스로 직면하기 싫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왜냐하면, 그 사고로 인해 잘못되는 상황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다면, 이렇게 되뇌어 보자.

"이건 진실이 아니라, 내가 익숙한 사고를 반복한 것뿐이야."

이렇게 생각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연습은 새로운 사고의 길을 만들어준다.  결국, 익숙함이란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큰 함정이다. 그렇기에, 익숙함의 족쇄에서 벗어난다면, 더 나은 판단과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항상 숨겨진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 욕구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때로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 괴리감은 내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곁에 있는 사람의 성공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유기불안에서 오는 경우이다. 자신이 상대보다 초라해져 버림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상대가 뛰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둘째, 질투에서 비롯된 경우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부터 자신의 무능감이 비참하게 느껴져 상대를 탐탁지 않아하는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전자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원하지만 이를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고, 후자는 자기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건강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숨겨진 진짜 욕구를 깨닫지 못하면, 표면적인 목표만 쫓아가는 셈이다.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어도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이 욕구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내가 지금 왜 이런 선택을 해왔는지, 그리고 내 모습이 왜 이렇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답을 찾지 못했던 문제들도 조금씩 풀릴 것이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모든 것은 상호작용으로 부터


이 모든 깨달음의 마지막 결론은,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상황이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매몰되어,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안된다면, 친구만의  사정이 생겼을 수 있다. 나 자신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친구가 자신의 불편한 입장을 솔직히 전한 뒤, 갑자기 냉정해졌다면, 불화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때 우리는 '왜 갑자기 저러지?'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상대방은 자신의 입장이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누군가가 자신이 정한 통제를 타인도 따라주길 바랄 때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왜 저렇게 강압적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효율적인 수행과 관리를 위해 그런 방식을 선호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판단하거나,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한쪽 시각에서만 본 결과일 수 있다. 모든 관계는 서로 다른 시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를 간과하면, 문제는 반복될 뿐이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고, 상호작용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매트릭스의 파란약을 먹을지 빨간약을 먹을지 그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향한 한 걸음일 뿐이다. 무엇을 먹던, 먹지않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더 넓은 시각을 통해 상황을 바라보고,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찾는다면, 이로써 더 많은 문제들이 풀릴 것이다. 장담 가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