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성적이 내 세상의 색을 정의하는 학교를 벗어나도
여전히 삶의 대부분은 숫자 매김이다.
나 이외의 모든 것에 수치를 들이대고,
혹여라도 재임당할 것을 대비해 자기 계발서를 집어 든다.
그것이 나의 사회 명찰을 늘려주는 줄 알고
세상에서 가질 등수가 그것 하나인 줄 알고.
숫자가 대변하는 외면에 몰입하는 이유 한쪽에는
내가 속한 세상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망가지면 안 되기에
시스템이 정해주는 정의와 수치에 복종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편에는, 그저 들은 대로 순응하는 것이
맨바닥부터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보다
일단은 간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등수 놀이에 빠진 채 허우적 할 힘마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창 틀에 모여 앉은 다섯 마리 참새와 눈이 마주쳤다.
움직거린 나를 눈치채고 날아간 맞은편 가로수에는
정오의 햇살을 받은 잎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수다를 떨고
그 나무가 만들어 낸 그늘 아래에는
내가 날려 보낸 참새 무리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노견이 있다.
희끗해진 콧잔등을 살짝살짝 움직여 윗 쪽 냄새를 맡는다.
녀석의 목줄은 팽팽해지는 법이 없다.
주인도 따라서 나무 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자에 가린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상상한다.
이 모든 것에는 숫자가 붙지 않는데,
알고 있지만, 왠지 나는 자주 잊는다.
잊지 않으려, 여기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