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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허로이 May 03. 2024

물멍,

나 사용기

나는 참 궁금했는데,

지난 겨울부터 종종 마주친 녀석은 내게 관심이 없다.

혼자 저 커다란 공간에 오도카니 있는 모습은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주변 무엇이든지 간에 관심이 없다.


매일 만날 수 없기에, 잊고 지낼 때도 많다.

이번 만남은 거의 한 달여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새 좀 자란 듯한 덩치를 하고, 여전히 호수 한가운데 물펌프를 딛고 있다.

정수리 검은 띠가 조금 넓어졌나,

커다란 날갯짓 한 번 보여주면 좋겠는데

소리 내어 부를 수만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슨 생각해?"


해가 길어진 계절, 이른 아침 햇살이 건물에 반사되어 녀석의 등에 닿는다.

호수 위를 흐르는 옅은 연무 사이로

바람만이 낮은 속삭임을 전하는 고요한 새벽,

일부러 빗어 내린 듯 단정한 흰빛 잿빛 깃털 끝이 사르르 흔들린다.

인간이 호수 반바퀴를 도는 동안에도 녀석이 움직인 건 고갯짓 3도.

무엇이 녀석을 저토록 집중시키는 것일까?

녀석의 시선은 오로지 앞만 향할 뿐이다

먹이를 찾는 것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도 아닌 듯한데,


늘 혼자인 왜가리의 고독, 녀석의 물멍에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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