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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허로이 May 15. 2024

배시시시시

나 사용기

PULL

을 당당하게 밀고 들어섰다.


'아, 당겼어야 하는데.'


흘끗, 왼편에 없고, 오른편에도 없다. 막 오픈한 시간이라 한가했다. 내 무심함을 들키지 않았다. 아침부터 분주해야만 하는 날이다. 몸은 마음 분주함을 따라주지 않았다. 애꿎은 팔다리를 탓한다. 내 마음은 이렇지 않을 텐데, 암시를 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00커피, 이렇게 저렇게 요건 빼고요."

"네. 고건 넣을까요?"

"아, 아뇨. 고건 빼주세요."

"향수, 향이 참 좋네요.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지네요."

"? 어.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좀 많이 뿌려서 민망했는데, 다행입니다."

"향이 좋아요. 출근하시나요?"

"아닙니다. 개인, 그냥 약속이 있어서요. 감사합니다."

배시시

배시시시시


오늘은 일정이 넷. 그중 특히 싫은 것은 셋. 챙겨 입을 옷을 생각하는 그 시간마저 아까울 만큼 부담스러웠다. 사실 이제는 하기 싫은 약속은 안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짬(?)은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실패하는 일들이 있어서, 오늘은 특히 주눅이 들었다. 내 표정이 좋았을 리 없다. 하지만 직원이 그런 표정까지 봤으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저 떠오른 대로 건넨 말일 것이다. 그녀의 얼굴도 아침 치고는 다소 피곤해 보였으므로.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아침 시작인데, 아니, 흔한 말로, 출근했는데 퇴근하고 싶은 날. 그런 기분이 유난한 날. 하늘이 파랗고! 산들바람이 불고! 햇살이 따뜻한데!

그러고 보니 약속 장소는 심지어 지하 2층이었지.


뭐 하나라도 빠뜨렸으면 어쩌지 그런 근심 어린 내 얼굴에, 그녀의 다정한 배시시가 닿았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마음이 몽실몽실 해지며 근심이 녹는다.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내게 신은, 주로 아쉬워서 찾는 대상이고, 불평거리 생길 때 떠오르는 존재다. 신과 나 사이 거리감은 그 정도. 그래도 살다가 이런 순간을 만나면, 나만을 위한 신의 배려를 상상하게 된다.


나의 배시시도 그녀에게 닿아서 다정한 토닥임이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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