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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부장 Sep 29. 2024

작가의 말

아니라고 말해도 괜찮아요

 


  1학년 담임은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많은 행동에서 바람직한 행동은 칭찬해 장려하고, 부정적인 행동은 지적해 체계적으로 줄여 나갈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습관 교정가 역할을 한다. 두더지 게임에서 무작위로 올라오는 두더지는 순발력으로 때려 없애기라도 하면 되지, 교실에서는 그 두더지를 붙잡고, 여기서 올라오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려는 순간 다른 두더지가 뿅 하고 나오는 반복을 일 년 내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뇌가 지쳐 학기말이면 상한 우유가 뇌 속에 흘러넘쳐서 뇌가 서서히 멈추는 듯한 느낌도 받을 때도 있다.       


  학년교육과정이 계획대로 잘 운영되도록 일정을 점검하고, 돌발 상황에 대응하며, 학년 선생님들이 학급에서 학급을 운영하는데 지원이 충분한지 살피는 게 학년부장의 일인데, 학교 밖에서는 되도록 일 생각은 적게 하고 싶었다. 학교 밖에서는 일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역설적으로 학교 밖에서 학교 생각을 하고 글을 써서 이 책을 묶을 수 있었다.     


  복직하기 전 핸드폰 없이 워치만 가지고 있어도 전화 통화가 되는 셀룰러 워치를 구입하고, 워치 요금제를 제공하는 알뜰폰으로 통신사도 바꾸었다. 핸드폰이 꼭 필요한 경우와 주말만 들고 다니고, 보통은 서랍 속에 넣어둔 채로 다닌다. 핸드폰이 없어도 급한 전화와 카톡은 오니까 핸드폰 사용 시간이 주당 3시간 내외로 획기적으로 줄었고, 교실 밖 풍경을 보면서 뇌가 쉬는 시간도 늘었다.     

 

  평일에는 핸드폰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다 보니 바쁜 업무에서도 주도권을 찾아 뇌가 쉽게 지치지 않았고, 출근길에 학교 근처 수영장에 들려 1회 평균 1km, 한 달이면 10km 정도 수영을 했다. 수영하러 놀러 가는 길에 가까운 학교도 들려서 일도 하고 온다고 생각하면 출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에너지를 쓰고 간 덕분인지 학생들에게 좀 더 너그럽고, 예민해지기 쉬운 환경에서도 에너지를 이미 많이 써서 화도 잘 안 났다.     


  오전 수영을 하지 못할 때는 자전거를 구입해 출퇴근 때 탔다. 일주일에 평균 3회 1회 왕복 9km씩 타니 3~6월은 한 달 평균 100km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 7월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지하철 출근으로 바꾸었지만 자전거 출근 역시 내가 운동한 김에 일도 한다는 새로운 연결 고리를 만드는데 효과적이었다.     

  

  계절 따라 꽃이 피는 강변을 달리며 탁 트인 길을 달리면 비좁은 지하철에서 설 자리를 확보하느라 고생스럽지 않았다. 나의 화를 돋우는 거친 운전자도 만날 일 없이 내 다리의 힘으로 속도를 조절하다 보면 삶의 속도도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거의 매번 출근 시간 직전에 교문을 통과했지만 그래도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느낌에 첫 부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할 만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께서 공부로 지친 우리들에게 옆에 있는 친구나 사소한 것에서 학교에 올 이유를 찾아보라고 권유하셨던 게 무엇이었는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은 알 것 같다.       


P.S. 2023년 7월 유명을 달리하신 서이초 선생님을 기립니다. 23년 7월 22일 종각에서 열린 첫 집회에 나갔던 마음으로 학교에서의 시간을 제 옆 그리고 멀리 떨어진 약자를 위해 마음은 포개고, 글은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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