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과 욕받이 그 사이 어딘가
민원은 말 그대로 시민이 공공기관에 대해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일이다. 학교도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학교를 상대로 한 민원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학교는 정해진 규정에 따라 대응해 불만을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어쩌다 학교는 민원의 쑥대밭이 되었을까?
권위주의 시대에는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게 학교의 주된 기능이었고, 교사와 학교에 학생 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교에서 배부되는 학기말 생활통지표를 보면 학생의 성적과 생활태도를 알기 어려울 정도다. 과목별 성적란에 상, 중, 하라는 언어 표현도 학생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 ○, △라는 기호를 쓰는 데다 세모를 받은 학부모들의 민원을 미리 예상해 세모는 웬만해서는 성적표에서 찾아볼 수 없다. 통지표만 보면 초등학교 교실은 훌륭한 학생들로 가득한 이상적인 곳이다.
학생의 문제 행동이 심각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게 좋을 정도이면 “~을 개선할 경우 발전이 기대됨”이라는 순한 맛 평가가 남발된다. 물론 담임은 학생의 학습 수준과 생활 태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예비 악성 민원인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예삿일이다 보니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관례가 어느새 암묵적인 규칙이 되었다.
권위주의 시절 방치된 학생의 인권을 끌어올려 새로운 학교 문화를 선도하고자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와 아동학대처벌법이 취지와 다르게 문제 행동을 일삼거나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의 방패막이로 사용된 지 오래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은커녕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없는 경우도 빈번하다.
학생이 교사의 언행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고소를 하면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언제든 교사가 피의자로 직위해제 처분될 수 있다. 존재 자체의 불안이 생기면서 교사는 더 이상 문제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를 상실했다. 교사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일단 물러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책무만 방어적으로 살피도록 교사는 강제 진화했다.
학교 민원의 특징은 민원인이 사건 직접 당사자가 아니고 학생을 통해 건너 듣는 경우가 많아 자주 오해가 생긴다는 점이다. 평소에 편식하던 아이가 급식 시간에 먹고 싶은 반찬만 받아 적게 먹고는, 하교 후 부모에게는 학교 급식량이 적다고 말하면 부모는 아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급식실 영양교사에게 항의하는 식이다. 확인해 보면 사실과 다른 경우도 있는데, 부모는 자식말만 듣고 학교에 각을 세우고, 믿는 대로 상황을 해석해서 민원을 제기하면 학교 구성원 누군가는 계속 그 얘기를 들어야만 하는 감정노동자가 된다. 민원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거나 불리한 점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이 아니면 말지'라는 배 째라 태도가 통하는 상황이니 무작정 민원을 넣고 보는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민원실을 만들어 개별 교사가 민원인과 직접 접촉하는 일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안 문제만 생기면 ‘OO실’을 만드는 땜질식 처방일 뿐이다. 민원이 사실이 아니면 민원 제기자가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 민원 전담 직원이 교감이어야 하지만 모든 민원 업무를 교감이 처리하기에는 이미 교감의 역할은 과부하 상태다. 간단한 문제는 직접 당사자인 담임교사와 바로 해결하는 게 좋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동일 민원을 제기하거나 수업 방해 소지가 있으면 별도의 민원 담당자나 민원 게시판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도록 민원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민원 제기 절차가 확립되어야 여과되지 않은 감정이 바로 전달되지 않아 학생, 보호자, 교사 모두 민원의 늪에서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