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1시간 2시간은 많은 고민에 빠진다.
몇 년이 지난 과거를 여행처럼 다녀오기도 하며 며칠 전의 과거를 다시 경험하듯이 바라보기도 한다.
과거에 나는 현재의 나 이전에 존재 나는 그것을 제3자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문득 똑같은 밤을 보내다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처럼 후회하는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과거는 끝이 났고 나의 희망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프기는커녕 후회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차분한 자유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차피 끝난, 희망이 없는 그것을 위해 나는 왜 그렇게 힘들어하였나. 희망을 버리니 자유가 보였다.
마치 예전 연인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긴 것을 들었을 때처럼 나는 자유로워졌다.
신경 쓰이던 것이 멀리 날아가 주위에 공기와 같이 남아있게 되었고 숨 쉬는 법이 당연한 것처럼 더 이상의 의미를, 나는 거기서 찾을 수 없었다.
신선한 경험,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란 이런 것이었을까?
처음 부조리한 인간상을 보고는 그렇게 살 수 없고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부조리를 바라보고 끌고 가다 보니 자유라는 존재가 왜 이제 알았냐는 듯 불쑥 나타났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부조리란 내가 원하는 욕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려놓는 것의 필요성이다. 내려놓음으로써 그것을 이길 생각 또한 들 수 있다.
부조리란 것에 잡아 먹히지 않고 대적하며 때로는 지기도 하며 때로는 이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모든 대결에서 이길 수 없듯이 우리는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된다.
모든 실패를 답습하고 이겨내기엔 나는 강하지 않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나는 이상적인 타인의 모습을 기대한다. 부조리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타인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 안에서 실망감과 씁쓸함에 갇혀 마주 보려 하지 않는다. 더는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몇몇은 나의 이상적인 타인에 없겠지만 그 몇몇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대적하며 부조리와 싸워야겠다. 이겨야겠다.
이렇게 보니 나는 타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조리를 견딜 수 없어 피하기만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겨야겠다. 싸워야겠다. 피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