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언니 화장품 빌려 쓸래!”
애교가 많았던 친한 동생이 나에게 신이 나서 물어봤고, 나는 흔쾌히 ‘내 가방 안에 있으니 꺼내서‘ 쓰라고 답을 했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생에게 잘 찾아 썼냐고 물으니 그냥 다른 친구의 화장품을 빌려 썼다고 얼버무렸다.
신이 났던 그 아이의 첫 표정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뭔가 잘못되었나 하며 내 가방을 확인하다가 깨달았다. 가방 주인 없이는 쉽사리 꺼내 쓰기 어려울 정도로 깨지고 부서지고 망가진 화장품들이 어찌어찌 테이프로, 고무줄로 겨우 생을 연장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나는 물건을 애지중지 쓰는 편은 아니다. 원래 편하게 쓰려고 물건을 사는 편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주의하지 않아도 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 쓰는 편이라 굳이 물건을 조심히 쓰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고, 되려 내가 그러기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구멍 난 옷들도 집에서 잠옷으로 자주 입고, 뜯어진 옷들은 이리저리 리폼해서 입고 다니기도 했다. 사실 엄청난 왈가닥도 아니고, 생각보다 소심한 면이 있어서 뭔가를 막 망가뜨리거나 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뭔가 하나를 사면 1~2년은 기본으로 쓰기도 했고. 그럼에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화장품들이 왜 이렇게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내 파우치 안에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자주 꺼내 쓰는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떨어뜨리거나 막 사용한 것도 아닌데, 왜?
그때, 내가 한 동안 한참을 들고 다니던 책이 너덜너덜한 모습이 되어 내 가방을 탈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이었고, 잘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짬날 때 읽었던 책이었는데, 결국 다 끝내지 못하고 가방과 가방을 옮겨 다니며 날 따라 여행만 했던 책이었다. 집에서 읽는 책, 자기 전 읽는 책, 다니며 읽는 책이 모두 분리가 되면서 이 책은 한 동안 ‘다니며 읽는 책’으로 활동했는데, 하필 그동안 돌아다니며 폰으로 다른 일을 처리하거나, 피곤해서 졸거나, 지인들과 함께 이동하거나 해서 책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그 책은 그렇게 한참 동안을, 끝까지 읽히지 못한 채 나와 함께 가방 여행만 하다가 겨우내 너덜한 모습으로 가방을 탈출했던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실수로 찢거나, 떨어뜨리거나, 흠집을 내지 않아도, 단순히 가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해지고 낡는구나. 내 화장품들도 나와 함께 다니며, 여러 파우치와 가방을 여행하며 다양한 곳에 머물렀고, 그렇게 낡고 깨지고 부서졌구나.
나는 그제야 내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조금은 더 조심히 다뤄서 더 오래 쓸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보다 그냥, ‘이 친구들이 나와 함께 여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게 여행자의 가방이고, 여행자의 소지품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근데 그렇게 보니 다르게 보였다. 원래 쓸 때에도 별 생각이 없긴 했지만, 이제는 뭔가 ‘나와 세월을 함께한 내 물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우치 안의 화장품뿐만 아니라, 10년 넘게 나와 전 세계를 여행한 구멍 난 내 하얀 스카프, 튼튼해서 뜯어지진 않았지만 색이 바래 흙빛이 묻어나는 노란 샌들, 7년 가까이 일상과 여행을 함께해 팔이 다 늘어났지만 오버핏으로 굳건한 버건디색 티셔츠 등, 나에겐 그런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물건도 오래된 물건도 모두 금방 낡고 닳았지만, 그만큼 빈티지처럼 오랜 기간 내 옆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찌 보면 이건 여행자의 숙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어차피 짊어질 수 있는 만큼만 가지고 다니는 것이 여행 아니겠는가. 이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때 그 아이에게 덜 미안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직접 보여주고 빌려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내가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낀 물건들이 다른 것들보다 더 해져있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해졌더라도 내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론 깨진 물건들, 낡고 해진 옷들을 보다 더 당당하게 들고 입고 다니며 말할 거다.
“제가 여행자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