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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Jul 28. 2024

취미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51 화실을 그만두는 이야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림을 정말 좋아했지만 그림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단순히 그림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 패션 디자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로 미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내 돈으로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미였던 미술이 어느 순간부터 일처럼 느껴졌다.






미술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패션도 공부도 어떤 직업도 인생과 삶은 경쟁이었다. 내 생각에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순위와 경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모두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저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에 순위를 부여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았다. 비교하지 않았다. 작품에서 오는 느낌이나 생각은 사람마다 모두 달랐고 그래서 비교를 하기 위한 기준이 없었다. 나는 비교와 경쟁을 싫어하지만 살아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비교했고 순위를 정했다. 하지만 미술을 시작하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었다.



나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미술을 배웠다. 미술에는 기준이 없었고 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사했고 별로라는 사람들에게도 내 작품을 봐주어서 그저 고마운 마음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모전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이 나의 작품을 보고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1년이라는 시간을 노력한 나의 결과를 증명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공모전을 위한 작품을 2개 준비했다.



미술은 취미였기 때문에 나는 미술을 배우면서 패션과 관련지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 미술을 배우고 처음으로 패션과 관련된 작품을 준비했다. 재밌었다. 평소 내가 공부하고 있던 패션과 취미였던 미술이 같이 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새로운 기분이었다. 공모전을 위한 첫 번째 작품을 준비할 때는 배운 것도 많고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했다.



첫 번째 작품은 순수했다. 공모전의 결과보다는 처음으로 작업하는 패션과 미술의 결합되어 있는 요소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진행할까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공모전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성적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분야였다.



작품을 완성하자는 생각으로 작업하며 작품 자체에만 집중한 첫 작품과는 다르게 두 번째 작품은 공모전의 개요나 수상작들을 찾아보며 공모전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공모전이라는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하니 취미였던 미술이 점점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취미가 일이 될 수는 있지만 일은 취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일이 되면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책임감의 그 무게는 결국 단순히 즐기기만을 할 수는 없게 만드는 것 같다. 물론 일이 취미처럼 즐겁게 느껴지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불가능하다. 그저 공모전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결국 두 번째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완성하기 전에 나는 화실을 떠났다. 최근 바쁜 일들이 많아서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스스로 핑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취미였던 미술로 패션을 하기 시작하며 나에게 일처럼 느껴졌고 공모전은 무게감을 알려주었다. 






취미는 일이 될 수가 있지만 한번 일이 돼버린 것은 취미가 될 수는 없다. 일을 즐기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지만 사실 모순적인 말이다. 일에는 무게감이 있다. 무게감을 느끼지 않고 단순히 일 자체를 즐기며 집중한다면 일도 취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취미가 일이 되어버렸고 다시 취미가 되기에는 지금의 나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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