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편지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쑥 훑고 가셔요.
처음 이 노래를 듣던 날엔 읽기 쉬운 마음을 잃기 쉬 운 마음으로 들었어. '나는 잃기 쉬운 마음이야.' 첫 소절을 듣고 잃기 쉬운 마음은 뭘까? 하는 생각에 뒷 가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
잃기 쉬운 마음은 뭘까?
나에겐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많아. 동시에 그 마음은 조금만 방심해도 잃어버리기 쉬운 마음이라 는 뜻이기도 해.
가장 잘 잃어버리는 마음은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이야. 늘 배려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지 하면서도 이런 마음은 살다 보면 쉽게 사라져. 나 살자고 이기적으로 외면하곤 하지. 그렇게 외면했으면 뻔뻔하게 끝까지 모른 척하고 싶은데 또 그러진 못해. 결국 구석에 밀어둔 마음을 다시 꺼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흠집 난 곳을 괜히 만지작거려.
나는 착하지 못하면서 착한 척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대체로 선한 마음을 자주 잃어버려. 다행인 것은 선한 마음은 그 자체로도 빛이 나서 자주 잃어버려도 잘 찾게 된다는 거야. 내가 잃어버리더라도 곁에 있는 누군가의 선한 마음이 빛나는 것을 보면 아차 싶어 다시 찾게 되지.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은 참 다정해. 내가 여러 번 잃어버리고 못 본 척을 해도 결국엔 빛나는 모습으로 나를 용서해 주니까. 이런 마음은 상호작용도 빨라서 누군가의 선한 마음이 내 곁으로 오면, 나의 마음도 같은 빛으로 더 밝아져. 그래서 자주 잃고 또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아.
두 번째 잃기 쉬운 마음은 좋아하는 마음이야. 이건 잃어버린 뒤에는 다시 찾기 힘들지도 몰라. 유한한 마음이거든.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이 들면 잃어버리기 전에 온 힘을 다해 좋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환경과 시간에 영향을 받는 이 마음은, 타이밍이 중요하거든.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새로 생기면 그 마음을 가장 앞세워. 사실 내가 마음을 앞에 놓는다는 것보다 마음이 먼저 앞으로 걸어 나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 모든 것을 이겨내고 가장 앞으로 나와 나를 움직이게 하지. 가장 에너지가 큰 마음이거든. 좋아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선물도 주잖아. 가끔은 내 기대보다 못한 선물에 초라해질 때도 있지만, 우린 알지. 당장은 초라해 보이는 선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빈티지의 멋을 뽐낸다는 것을. 애정에 기반한 마음은 잃은 뒤에도 추억을 남기니 어쩌면 잃기 쉬우나 결국엔 잃어버린 것이 없는 마음일 수도 있지. 너무 말장난 같으려나. 그냥, 좋아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하는 소리니 웃으며 들어줬으면 해.
너는 어때?
네가 쉽게 잃어버린 마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니. 이미 영영 찾을 수 없는 마음들이 많아 괴롭지는 않니.
잃어버린 마음에 너무 슬퍼하지는 않기로 해. 우리로 인해 생겨난 마음들은 결국엔 잃어버린 것들의 섬에서 만나 우리 이야기를 잔뜩 하고 있을 거야. 칭찬도 하고 고맙다는 말도 할걸? 가끔은 우리가 너무 까다로웠다며 흉볼지도 모르지. 그래도 다들 마지막엔 그리워하며 응원하겠지.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린 마음으로 남겠지만 그마저 우리의 약속이라 믿으며, 잘 자 오늘도.
꿈도 꾸지 말고 편안한 밤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