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7월 말, 클럽에서 누군가 도전을 한다기에 트레일런이 무엇인지 잘 모른 체 접수를 하였다.
날씨가 더워 로드 달리기는 힘들었는데, 산을 오르다 보면 우거진 숲에 시원한 공기가 목구멍을 지나 가슴에 닿는 기분이 좋아 덜컥 신청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회를 마쳤다니 감회가 새롭다.
주최 측에서 요청한 필수 장비들과 2박 3일 짐을 챙겨 잠시 취침, 오랜만에 일과 육아의 해방감이랄까?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가는 느낌으로 설레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목포여객터미널에서 퀸메리호를 타고~제주로 출발 이렇게 화창한 날씨가 대회당일 악천우로 바뀔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도착하니, 여러 업체들이 참가한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다. 러너의 필수품 아미노바이탈을, 시중보다 싼 가격에 사고, 살로몬의 신발과 조끼는 품절이라 아쉬웠다.
대회장에서 가까운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트레이러닝에 경험이 많은 회장님의 코스브리핑이 시작되었다. 길이 좋은 Cp1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라고 하셨다.
돌길은 부상방지를 위해 걷는 것을 추천하셨고,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계단이 2,500개이니 한번 세어보라고 하셨다. 여러 번 참가해 보신 경험들이 처음 참가하는 나에게 이번 브리핑이 경기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잠들기 전 다시 한번 장비점검, 배번 부착하고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첫 장거리 대회로 긴장한 탓인지 3번~4번 잠에서 깼다. 내일 산속에서 낙오할 걱정 때문이다.
고향인 몽탄 꿈여울러닝크루도 이번에 출전하였는데 영복이 형과 형수님 부부는 15시간 만에 완주하였다.
특히, 소뇌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형님이 이번에 도전한다고 하여 나에게도 끝 자극이 되었다.
정말 대단한 부부!! 내심 이번대회를 추천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많았지만 부상 없이 완주하여 다행이다.
1,200명의 트레일러너들이 함께 출발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어둠이 낮게 깔린 제주도의 새벽을 깨우며 각자의 목표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초반 언덕로드는 약 4km가량이다. CP1까지는 달릴 수 있는 구간으로 기록을 원하시는 분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놔야 한다는 회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라산 초입 임도를 지나, 치유의 숲을 지나니 동백길이 나온다. 본격적인 돌길이 나오기 시작한다. 제주도가 돌이 많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이정도로 많을 줄이야... 질려버렸다.
CP2를 지나 영실코스로 들어가니, 비바람이 강해진다. 가방에 두었던 방수재킷을 꺼내어 입는다. 4L 가방으로 무게를 줄일까 고민하다. 다시 챙겼는데 큰 힘이 되었다. 다시 한번 한라산이 쉽지 않은 산임을 깨닫는다.
윗세오름에 오르니 멋진 능선이 펼쳐진다. 이 풍광에 감동해서 대회신청을 했는데 볼 겨를이 없었다. 체온이 떨어져 손이 붓고 미세한 경련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마그네슘을 미리 먹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돈내코는 돌 때문에 땅만 보고 가느라 사진이 없고, 내려와서 목포마라톤 최초 서브 3이신 전설 황서브님과 사진 한컷 했다.
어두침침한 돌길을 지나 서귀포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니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직도 20km가 남았다니, 걱정이 컸다.
CP4를 지나, 속도를 내야 할 곳에서 왼쪽 무릎이 고장 났다. 문득 회장님께서 경기도중 산속에서 낙오하면 안 되고 진통제라도 먹고 CP까지 와야 한다는 말과 함께 주신 진통제를 먹으니, 3분 안에 통증이 없어져 다시 5분 페이스로 달릴 수 있었다.
50km 지점에서 마지막 응원을 열심히 해주시던 자봉선생님께서 다 왔으니 힘내란 말에 그간 추위와 한라산 돌에 당한 시련과 고초가 생각나 울컥하며 감동이 생겨난다.
마지막 힘을 짜내며 점프해서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드.디.어. 완주했다는 안도감에 자리에 푹썩 주져 앉아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구입한 지 2달 된 신발 밑창을 보니 내가 산속을 열심히 달리긴 했구나..
이번대회를 참가하며 깨달은 것은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음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