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그것이 상위 10% 부유층의 탓이더라도
커버 이미지 출처: Oleksandr Sushko
여기 달콤한 파이 한 판이 있다. 현재 사람 수는 총 열 명. 그런데 한 명이 파이의 절반을 먹어버렸다. 다른 네 명은 각각 한 조각 씩 먹었다. 남은 다섯 명은 겨우 한 조각을 나눠먹느라 남은 하루를 배고픔에 시달렸다.
또 다른 이야기로 옮겨가보자. 폭설이 내리는 혹독한 겨울, 집안에는 열 명의 사람이 있다. 이중 한 명이 추위를 대비해 모아놓은 장작의 절반을 써버렸다. 네 명은 각기 제 몫을 가져가 사용했고, 남은 다섯 명은 추위에 동상을 입거나, 얼어 죽었다.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2023 배출량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0%에 속하는 부자들이 2021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반면 하위 50%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해 세계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것에 그쳤다. 기간을 넓혀 여태까지 기록된 세계 배출량으로 따지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이로 인한 기후재난의 피해는 가난한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 상위 10%의 부자가 글로벌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여파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제일 먼저 찾아가 가장 큰 타격을 주고, 마침내 그들을 더욱 빈곤케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악재를 우리는 '기후재난'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폭염이나 혹한, 폭우로 인한 홍수, 폭설로 인한 피해, 가뭄, 태풍, 산불과 같은 대형 화재,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는 섬지역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재난은 빈곤한 국가, 빈곤한 지역, 혹은 빈곤한 자들에게 재산 및 인명 피해, 농작물 손실, 노동생산성 하락, 식량 문제, 보건 문제 등 총체적인 고통을 안겨준다.
부유한 국가의 경우 이미 충분한 자원과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어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거나 그 피해를 적게 본다. 또 이를 복구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난한 국가에서는 이를 대비하거나 복구할 돈도 기술도 인력도 없다.
빈곤의 파괴적인 힘을 알고 있는 우리는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범세계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재난은 그 노력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세계은행(WB)은 기후 변화가 빈곤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저영향 시나리오와 고영향 시나리오로 나누어 계산했다. 그 결과 저영향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 평균 예상치(기후 변화 요인을 제외했을 때의 예상 빈곤층 인구수) 보다 빈곤에 빠지는 인구가 12%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영향 시나리오의 경우 그 수는 평균치 대비 32%까지 오른다.
그 수치를 정확하게 계산하면 2030년에 3억 5110만 명에서 4억 142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빈곤선(육체적 능률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저한도의 수입 수준) 이하의 삶을 살 것으로 추산된다.
기후재난 피해를 메우기 위한 금액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 이는 개발도상국 등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맥킨지(McKinsey)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2050년까지 매년 6000억 달러가 필요하다. 이는 현재보다 10배에서 18배가량 큰 규모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기후위기를 덜 느껴서일까? 부유한 나라들은 세계가 닥친 위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 모양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담에서 부유한 국가들은 가난한 나라의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약 132조 원)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기한을 한참 지난 2년 뒤에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지난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손실 및 피해(loss and damage)'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후 재난으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손해를 입은 취약한 국가들을 돕기 위한 합의였다. 이 자리에서 일본은 1000만 달러를 내기로 약속했다. 미국의 경우 고작 1750만 달러를 약속해 기후운동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나 독일이 각각 1억 달러를 내기로 했으니 비교가 될 만도 하다. 이조차도 넉넉한 금액은 아니지만.
돈은 중요하다. 기후위기를 멈추거나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어마무시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환경을 파괴한 게 아니라 있는 걸 누린 것뿐인데'라며 억울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른 척하거나 미적거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회피하고 싶을수록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책임지는 것이 가장 빠르게 문제를 해치워버리는 방법이다.
파이를 먹지 말라는 게 아니다. 각자의 몫만큼 파이를 먹고, 남의 파이를 먹어버렸다면 내 몫의 파이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남을 추위와 굶주림에 떨게 하지 말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