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꿘새댁 Feb 02. 2024

딸 같은 며느리는 없어요

딸은 딸, 며느리는 며느리

 결혼 전 한 번쯤은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결혼하게 될까 혹은 결혼하고 싶을까. 구체적으로 원하는 조건은 딱히 없었다. 내가 결혼하게 될 남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원하는 조건이 몇몇 있었지만, 그 사람의 가정에 대해서는 무난하면 될 것 같다 정도로 생각했다. 너무 화목해 보여도, 너무 힘들어 보여도 둘 다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냥 뭐든지 적당히 평범하게. 때론 행복하고 때론 힘들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식적이거나 표면적이지 않은 솔직한 삶의 모습이다.


 현재 남편내가 생각했던 평범하고 무난한 그런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의 성격도 크게 뾰족한데 없이 적당히 둥글고 무던하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남편에겐 3살 터울의 누나가 있는데 난 아직도 형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다. 원래 우리 친정은 친척끼리의 교류도 없는 편이라 친척간의 호칭도 잘 모르고 컸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하고 직계 가족 이외 분들을 만날 때 호칭을 불러야 하는 것이 아직도 낯설다. 우리 형님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누나의 모습을 갖고 있다. 나도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지만 우린 한 살 차이라서 그런지 20살 이후로는 친구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남편과 형님은 3살 차이라 그런지 확실히 형님이 누나다운 누나 같은 분위기가 있다. 여성스럽고 차분한 그러면서도 따뜻해 보이는 형님만의 분위기가 내 남편에게 참 좋은 누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시부모님과 형님네와 함께 했던 연말 집들이 그리고 남편과 함께한 요리, 참 즐거웠다.

 어머님과 아버님도 참 좋은 분들이다. 남편과 나의 신혼집은 시댁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너무 가까운 게 아니냐 혹은 불편함 점은 없냐 등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들 정도의 가까운 거리인데 정작 나는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게 없다. 오히려 가까이 계셔서 감사하게도 도움 받는 것들이 더 많다.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는 분들은 전혀 아니다. 가까이 계셔도 그 거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으신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참 감사하다. 전형적인 요즘 애들 같은 나의 성격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시부모님을 만나게 된 건 참 행운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말해주듯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애초에 딸 같은 며느리였다면 '부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친정엄마는 엄마라고 부르고, 시어머니는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엄마와 어머님은 호칭 차이뿐만 아니라 어감의 차이도 크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친정 엄마 앞에서는 투정도 부리고 표현도 하지만, 어머님 앞에서는 최대한 웃는 모습을 보여드린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예의를 지키며 행동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내 기준에 예의에 맞지 않기 때문. 아버님께도 마찬가지다. 아버님은 우리 친정 아빠와 동갑이시다. 두 분은 동년배라 그런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표현에 서툴다는 것이다. 감정을 읽으려면 잠깐 스쳐가는 눈빛이나 입꼬리 모양에서 느낄 수 있는데, 아버님은 날 예뻐하시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전형적인 요즘 애들 같은 집안에서 가장 어린 며느리를 아직은 적응 중이신 게 느껴진다. 


 나도 아버님을 대할 때 아직은 모든 것이 어렵다. 성장하면서 친정 아빠와도 안 맞는 게 너무 많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린 성격이 너무 똑같아서 안 맞았다. 남동생과 아빠가 싸운 횟수보다 내가 아빠랑 싸운 횟수가 훨씬 많다. 보통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하는데 난 어릴 때는 성격부터 외모까지 아빠 판박이였다. 성장하면서 후천적으로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근본은 아빠 성향이 너무 컸기에 우린 걸핏하면 충돌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님을 대할 때도 애교 많고 귀여운 며느리보다는 더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된다. 어쩌면 예의를 지킨다는 것이 마음의 거리라고 생각될 수 있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난 이미 이렇게 성장했기 때문에 마음이 더 가까워진다고 해도 시부모님께 애교 많은 딸 같은 며느리가 되기보다는 예의를 갖춘 며느리 같은 며느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친정 부모님 대하듯이 애교 넘치는 며느리들을 티브이에서 보면 참 신기하다. 저건 타고난 성향과 성장 배경이 가능해야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첫 번째 결론. 그런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주변이 아닌 티브이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는구나 라는 게 나의 두 번째 결론이다. 그리고 저렇게 보이는 사람도 속은 알 수 없다는 게 나의 마지막 결론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시부모님도 엄마, 아빠라고 똑같이 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부모님이 생기는 거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이 또한 알겠다. 나는 애초에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고 딸 같은 며느리가 되기보다는 며느리 같은 며느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적당한 거리감이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사실.

케이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센스 있게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사다 주신 형님, 너무 맛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아버님의 표현이 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아버님께서 우연히 내 사진을 보시고 하셨던 말씀. "요즘 애들처럼 생겼더라." 그때 그 말을 전해 듣고 웃음이 나왔다. 처음 듣는 표현이었기 때문.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인정이 되었다. 나는 내가 봐도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요즘 애들이기 때문. 그리고 그런 나의 이미지가 어른들이 보실 때 느껴진다는 게 뭔가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아마 우리 시부모님도 집안의 새로운 막내이자 요즘 애들 같은 며느리를 적응하시느라 아직은 낯설고 마음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아직도 적응 중인 결혼 생활에서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조금 더 익숙해지고 편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언제나 시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언제나 부담 주지 않으셔서 참 감사해요. 오빠랑 행복하게 잘 사는 며느리가 될게요."

그렇게 난 딸 같은 며느리가 될 수는 없지만, 며느리 역할에 충실한 며느리가 되기로 다짐한다.

이전 09화 임신은 위대한 업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