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딸, 며느리는 며느리
결혼 전 한 번쯤은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결혼하게 될까 혹은 결혼하고 싶을까. 구체적으로 원하는 조건은 딱히 없었다. 내가 결혼하게 될 남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원하는 조건이 몇몇 있었지만, 그 사람의 가정에 대해서는 무난하면 될 것 같다 정도로 생각했다. 너무 화목해 보여도, 너무 힘들어 보여도 둘 다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냥 뭐든지 적당히 평범하게. 때론 행복하고 때론 힘들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식적이거나 표면적이지 않은 솔직한 삶의 모습이다.
현재 남편은 딱 내가 생각했던 평범하고 무난한 그런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의 성격도 크게 뾰족한데 없이 적당히 둥글고 무던하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남편에겐 3살 터울의 누나가 있는데 난 아직도 형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다. 원래 우리 친정은 친척끼리의 교류도 없는 편이라 친척간의 호칭도 잘 모르고 컸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하고 직계 가족 이외 분들을 만날 때 호칭을 불러야 하는 것이 아직도 낯설다. 우리 형님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누나의 모습을 갖고 있다. 나도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지만 우린 한 살 차이라서 그런지 20살 이후로는 친구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남편과 형님은 3살 차이라 그런지 확실히 형님이 누나다운 누나 같은 분위기가 있다. 여성스럽고 차분한 그러면서도 따뜻해 보이는 형님만의 분위기가 내 남편에게 참 좋은 누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머님과 아버님도 참 좋은 분들이다. 남편과 나의 신혼집은 시댁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너무 가까운 게 아니냐 혹은 불편함 점은 없냐 등 다양한 질문을 하게 만들 정도의 가까운 거리인데 정작 나는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게 없다. 오히려 가까이 계셔서 감사하게도 도움 받는 것들이 더 많다.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는 분들은 전혀 아니다. 가까이 계셔도 그 거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으신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참 감사하다. 전형적인 요즘 애들 같은 나의 성격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시부모님을 만나게 된 건 참 행운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말해주듯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애초에 딸 같은 며느리였다면 '부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친정엄마는 엄마라고 부르고, 시어머니는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엄마와 어머님은 호칭 차이뿐만 아니라 어감의 차이도 크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친정 엄마 앞에서는 투정도 부리고 표현도 하지만, 어머님 앞에서는 최대한 웃는 모습을 보여드린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예의를 지키며 행동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내 기준에 예의에 맞지 않기 때문. 아버님께도 마찬가지다. 아버님은 우리 친정 아빠와 동갑이시다. 두 분은 동년배라 그런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표현에 서툴다는 것이다. 감정을 읽으려면 잠깐 스쳐가는 눈빛이나 입꼬리 모양에서 느낄 수 있는데, 아버님은 날 예뻐하시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전형적인 요즘 애들 같은 집안에서 가장 어린 며느리를 아직은 적응 중이신 게 느껴진다.
나도 아버님을 대할 때 아직은 모든 것이 어렵다. 성장하면서 친정 아빠와도 안 맞는 게 너무 많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린 성격이 너무 똑같아서 안 맞았다. 남동생과 아빠가 싸운 횟수보다 내가 아빠랑 싸운 횟수가 훨씬 많다. 보통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하는데 난 어릴 때는 성격부터 외모까지 아빠 판박이였다. 성장하면서 후천적으로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근본은 아빠 성향이 너무 컸기에 우린 걸핏하면 충돌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님을 대할 때도 애교 많고 귀여운 며느리보다는 더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된다. 어쩌면 예의를 지킨다는 것이 마음의 거리라고 생각될 수 있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난 이미 이렇게 성장했기 때문에 마음이 더 가까워진다고 해도 시부모님께 애교 많은 딸 같은 며느리가 되기보다는 예의를 갖춘 며느리 같은 며느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친정 부모님 대하듯이 애교 넘치는 며느리들을 티브이에서 보면 참 신기하다. 저건 타고난 성향과 성장 배경이 가능해야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첫 번째 결론. 그런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주변이 아닌 티브이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는구나 라는 게 나의 두 번째 결론이다. 그리고 저렇게 보이는 사람도 속은 알 수 없다는 게 나의 마지막 결론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시부모님도 엄마, 아빠라고 똑같이 부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부모님이 생기는 거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이 또한 알겠다. 나는 애초에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고 딸 같은 며느리가 되기보다는 며느리 같은 며느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적당한 거리감이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이라는 사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아버님의 표현이 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아버님께서 우연히 내 사진을 보시고 하셨던 말씀. "요즘 애들처럼 생겼더라." 그때 그 말을 전해 듣고 웃음이 나왔다. 처음 듣는 표현이었기 때문.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인정이 되었다. 나는 내가 봐도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요즘 애들이기 때문. 그리고 그런 나의 이미지가 어른들이 보실 때 느껴진다는 게 뭔가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아마 우리 시부모님도 집안의 새로운 막내이자 요즘 애들 같은 며느리를 적응하시느라 아직은 낯설고 마음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아직도 적응 중인 결혼 생활에서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조금 더 익숙해지고 편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언제나 시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언제나 부담 주지 않으셔서 참 감사해요. 오빠랑 행복하게 잘 사는 며느리가 될게요."
그렇게 난 딸 같은 며느리가 될 수는 없지만, 며느리 역할에 충실한 며느리가 되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