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까 알겠다. 엄마는 위대하다.
나에겐 삼총사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작년 5월 아들 엄마가 되었고, 나는 임신 중이고, 나머지 한 명 친구가 이번에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3월에 태어날 우리 알콩이와 동갑인 용띠 아기가 또 한 명 태어날 예정이라니 정말 신기하고 좋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삶의 형태로 같이 변해가고 늙어간다는 건 축복인 것 같다. 공유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고 너무 기쁘고 축하해 주었지만, 사실 그날 나는 갑작스러운 두드러기성 피부병으로 고생을 했다. 한창 설레고 기쁠 친구에게는 축하한다고만 할 뿐 나의 그런 상태를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행복만 즐기기에도 벅찬 순간이니까.
임신했다는 사실을 주변사람에게 알리면 다들 첫마디는 "축하해"로 시작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임신하기 전에는 축하한다며 마냥 해맑게 태어날 아이를 축복해 줬다. 그런데 이제는 임신 소식을 들으면 "축하해, 그런데 몸 관리 잘해. 임신 생각보다 쉽지 않아."라는 반응이 나온다. 임신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기간인지 직접 체험해 보니 태어날 아이만 생각하면 축복이지만, 고생할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아이를 품고 있는 10개월의 시간이 참 짧으면서도 길다. 이제는 32주 만삭 임산부로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임신 기간 내내 모든 신체 변화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임산부의 힘든 증상은 각기 다르다. 내가 힘들었던 부분이 다른 임산부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고, 다른 임산부의 힘들었던 부분은 나에게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 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작년 5월에 엄마가 된 내 친구와 비교하더라도, 우린 입덧이 없다는 공통점만 공유할 뿐 나머지 겪었던 힘든 증상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막 임신한 친구들이 궁금한 게 많다는 표정으로 임신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자세한 대답은 피하게 된다. 괜히 나의 이야기를 해줘도 불필요한 걱정만 증폭시킬 뿐 상대에게는 해당이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임신 기간은 어땠을까. 임신 초기의 나는 우선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잘 체감하지 못했다. 그냥 앞으로 다가올 몸의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천천히 오르는 몸무게를 보며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과연 예전으로 내가 돌아갈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생각.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여유로운 걱정이었다. 난 입덧이 없었기 때문에 임신 초기에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가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눈에 띄는 큰 변화라면 갑자기 시작된 배탈, 환도 선다 통증, 그리고 완전히 바뀌어버린 입맛 이렇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임신 초기부터 임신 후기인 지금까지 배탈은 나의 임신 기간 중 최대 적이다. 환도 선다 통증은 임신 초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발을 땅에 내딛기 힘들 정도로 오른쪽 골반부터 발끝까지 통증이 심했다. 임신초기에 환도 선다 통증이 오는 건 정말 드문 증상이라 갑자기 디스크가 온 건지 의심이 돼서 정형외과도 찾아갔었다. 그런데 임산부라 특별히 먹을 수 있는 약도 없었고 그냥 몸을 사리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생하다 보니 신기하게 환도 선다 통증은 어느 날 완화가 되었고 아직까지 그때의 동일한 통증은 다시 나타나진 않고 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할 정도로 입맛이 바뀌었는데, 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빵과 그릭요거트를 좋아했다. 빵과 그릭요거트는 나에게 밥과 국 같은 존재로 하루에 한 번은 꼭 먹어야 하는 주식이었다. 그런데 임신 초기에는 신김치가 너무 먹고 싶고, 남편 입맛과 비슷하게 국밥과 라면을 먹는 등 평소 먹지 않던 칼칼한 한식 위주의 음식만 즐겨 먹었다. 이런 입맛의 변화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만의 입덧이었나 싶기도 하다.
임신 중기로 진입하자 갑자기 피부병에 걸렸다. 몸에 열꽃이 피어오르듯 붉은 점박이 형태의 발진이 조금씩 생기더니 순식간에 얼굴을 제외한 목부터 허벅지까지 전신에 퍼져버렸다. 어릴 적부터 아토피는 있었지만 이런 종류의 피부병은 걸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혼전임신으로 당시 결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던 시기라 결혼식 전까지 낫지 않을까 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등장하고 싶은 결혼식날에 한 번도 겪지 못했던 피부병 때문에 예쁜 모습으로 서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결국 기적적으로 결혼식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생각보다 많이 완화가 되어 바디메이크업을 진하게 하고 최대한 표시가 나지 않게 들어갔지만, 그때의 스트레스는 우울함으로까지 번질 수 있을 만큼 극심했다. 아무튼 나는 당시에 내 증상이 임신 소양증이라고 생각하고 산부인과에 달려갔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보시더니 임신 소양증이 아니라며 대학병원 피부과를 연계해 주셨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장미색비강진. 장미색비강진은 일종의 감기 같은 피부병으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갑작스레 왔다가 자연스레 한두 달 후에 지나가는 피부병이라고 한다. 웬만하면 얼굴까지는 올라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조금 심한 편이었는지 턱과 입술 부근까지 올라와서 임산부가 바를 수 있는 연고와 먹는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임신 중기에 날 힘들게 했던 건 감기, 비염, 배탈이었다. 임신 중기 들어서면서 이상하게 비염이 정말 심해졌다. 콧물이 많이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코가 그냥 꽉 막혀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각을 잃었다. 음식에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고 개코라고 장담하던 나의 후각은 둔해질 대로 둔해져서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임신 기간 동안 맛난 음식을 먹는 로망이 있었는데 미각을 잃고 나니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었다. 그리고 눕기만 하면 코가 더 심하게 막혀서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앉아서 잘 수 도 없고 누우면 코가 막히고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밤이 그렇게 길고 힘든 시간인지 처음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감기에 걸려버렸다. 분명 독감주사를 맞았는데도 난 임신 중기에 두 번이나 감기에 걸렸다. 임산부는 감기에 걸려도 먹을 수 있는 약이 별로 없기 때문에 컨디션 난조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수액도 맞아봤지만, 조금 완화될 뿐 크게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임산부는 한번 감기에 걸리면 다시 임신 기간 중 감기 걸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두 번 경험하고 나니 누가 임신 중에 감기 걸렸다고 하면 마치 나의 일처럼 걱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임신 중에 기침을 하면 배가 얼마나 당기고 아픈지 이건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이다. 그렇게 두 번의 감기를 거치고 이제 좀 컨디션이 괜찮아지나 싶을 때쯤 노로바이러스에 걸렸다. 나에게 배탈은 임신 초기부터 계속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굴보쌈을 잘못 먹고 노로바이러스에 걸려서 더 호되게 배탈증상을 겪었다. 그 당시 알콩이가 태어나기 전 요리를 배워보겠다고 야심 차게 요리학원을 다녔었는데 노로바이스에 걸리고 컨디션이 정말 깨져서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 갑자기 구토를 심하게 한 후 요리학원 다니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컨디션을 인정하고 권길동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집 밖을 돌아다니길 좋아하던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컨디션 관리에 집중하며 집에만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어느덧 32주 임신후기 임산부가 되었다. 임신후기 증상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최종버전은 아니겠지만, 벌써 여러 증상을 겪고 있다. 갑작스러운 두드러기, 등과 허리 통증, 소화불량, 배탈이다. 엊그제도 서두에 말했듯이, 이틀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두드러기가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서 본가에 놀러 왔다가 급하게 택시를 타고 산부인과에 갔다. 가자마자 의사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이건 더 퍼질 수 있다며 엉덩이에 맞는 주사 두대를 처방해 주셨다. 신기하게도 주사를 맞고 나니 급속도로 호전되었지만 다음날까지도 두드러기 증상은 지속되었다. 이전에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연고를 바르며 약은 최대한 먹지 않고 버텨냈다. 냉찜질과 연고 바르기를 반복하니 다행히도 증상이 완화되어 큰 고비를 넘긴 느낌이었다. 등과 허리 통증도 임신 후기 넘어오면서 겪고 있는 큰 변화인데 배가 만삭으로 나오다 보니 허리와 등에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앉아있다가도 등과 허리 통증으로 누워야 하고 저녁이 되면 보통 통증이 더 심해져서 저녁을 먹다가 밥 먹기가 힘들어지는 수준의 통증을 느낄 때도 있다. 소화불량도 같이 따라오는 임신 후기 증상인데, 윗배가 많이 나오다 보니 조금만 먹어도 배가 금방 차서 한 번에 많이 먹지를 못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자주 먹게 되고 맛있는 음식에 조금만 욕심을 부려서 먹으면 정말 소화가 힘들어서 자제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배탈은 오늘도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분명 배탈이 날 만한 음식을 먹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오전에 또 배탈이 심하게 나서 하루종일 기운이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반나절을 자고 일어나서도 컨디션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지친다. 이럴 때는 괜히 당분이 땡겨서 최근에 잘 먹지 않았던 초콜릿케이크를 주문해서 따뜻한 차와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돌아보니 나의 임신 기간도 만만치 않게 파란만장했구나 싶다. 그리고 이제는 출산하는 그날까지 무탈하게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힘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특별하고 갑작스러운 이벤트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임신 초기 임산부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아직은 임신을 체감하기 힘들겠지만, 나의 몸과 면역력은 임신 후에 급격히 달라지기 때문에 꼭 조심해야 한다고 말이다. 미리 조심한다고 모든 걸 예방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미리 유난스러울 정도로 조심하면 하나라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하루하루 더 크게 몰려온다. 자연분만을 시도해 볼지, 선택제왕으로 결정할지 그 어떤 것도 찾아볼수록 쉬운 게 없고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물론 내 성격에 주치의 소견을 따르겠지만 나름의 고민은 계속하고 있다. 출산까지 경험하고 나면 그 리얼한 후기를 글로 담아낼 생각이다. 그런데 직감적으로 알 것 같다. 지금까지도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더 만삭을 향해 달려갈수록 몸은 더욱 힘들 것이고 출산이라는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요즘 정말 느끼고 있다.
"임신은 위대한 업적이다. 그래서 엄마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