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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새댁 Apr 18. 2024

예쁘게 부탁하는 법.

상처 주지 않으며 말하고 싶다.

 지금은 목요일 밤 10시 28분.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데도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하루라도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지 않으면 두통이 오던 내가 외출한 지가 언제인지 헷갈리는 삶을 살고 있다. 확실한 건 어제오늘 집에만 있었는데 왜 이렇게 바쁜 건지 집안일은 소리 없이 일이 참 많다. 특히나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게으름 따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임신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자면 아이가 태어난 지금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컨디션이 날이 갈수록 회복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임신했을 때가 그리운 순간을 꼽자면 임산부는 당당하게 게으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의 게으름에 대해 탓하지 못하고 내가 좀 게으름을 피워도 스스로도 용서가 된다. 그때의 게으름을 지금 돌아보니 아이가 태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는 혼자만의 여유였다. 그 여유가 때때로 그립지만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를 정신 차리면 밤이다 싶은 수준의 부지런함으로 아이와 함께 보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육아를 하며 좀처럼 풀리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함께하는 남편과의 소통 방식이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부모 자식 관계도 너무 중요하지만 사실 부부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이들은 크면 독립을 하게 되고 남는 건 부부끼리 한평생을 살아가니 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남편과의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서로 다른 점이 있어도 넘어갈 수 있었고 부부끼리의 문제는 우리 둘만의 문제이다 보니 해결이 더 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 육아를 하게 되니 서로의 다른 점에 있어 너그러워지기가 어렵다. 사실 남편보다는 내가 더 그렇게 변했는데 아무래도 엄마라는 존재는 모성애가 더욱 강해지면서 아이와 관련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예민해진다.


 이런 상황은 비단 남편한테 뿐만 아닌 나를 포함한 아이를 같이 양육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나와 남편이 주 양육자이기 때문에 서로의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소통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확실히 여유가 사라지면서 대화의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밀려오는 피곤함을 뒤로하며 대화를 나누기란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점이자 요즘 나의 최대 고민거리는 예쁘게 부탁하는 법이다. 내 남편은 감사하게도 금손인 편이라 집안일이나 육아 모두 잘 해내는 사람이다. 그런 모습이 항상 고마우면서도 육아에 있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까다로워진 내 기준이 좀 더 잘해주면 하는 점들을 꼭 짚어서 얘기하게 된다. 이미 잘해주고 있다는 걸 알지만 좀 더 내 아이를 잘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더 까다로운 요청을 하게 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육아는 서로가 소통을 하며 같이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이다. 그래서 서로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이런저런 부탁을 하게 되는 건 꼭 필요하다. 문제는 이 부탁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어쨌든 상대방에게는 더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전달이 될 텐데 지금도 잘하고 있는 상대에게 그런 의도가 전달되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매일 같이 부탁을 하고 있는 요즘 어떤 대화법으로 요청을 하면 우리의 관계가 다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스스로 말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육아를 하며 이런 상황에 봉착하니 내가 말을 잘했던 사람인지도 의심이 된다.


 이럴 때 예전의 나는 서점에 가서 관련 서적을 읽으며 정답을 찾았던 것 같다. 화법에 관한 책이 정말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도움을 받는다. 바쁘게 살다 보면 시간이 없어 책을 자주 읽지는 못하지만 내가 궁금한 점이 생길 때 책을 읽다 보면 풀리지 않던 고민이 해결된다. 지금은 이제 막 태어난 지 42일이 된 딸과 함께 생활하며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오늘도 문득 혼자 화법에 대한 고민을 하며 여유롭게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당연하게 느껴지던 일상이 지금은 너무 소중하게 그리워진다.


육아는 참 어렵다. 

예쁘게 부탁하기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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