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연락을 끊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웃으며 볼 수 있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형태의 친구를 사귀게 된다. 초중고 시절 친구, 대학 친구,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게 되는 친구 등등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어떻게 사귀게 된 친구인지가 자연스레 구분이 된다. 그중 가장 순수한 어린 시절부터 쭉 만남을 이어온 초중고 시절 친구들은 이제 동창이라고 불리며 더욱 돈독한 사이를 자랑한다. 나 또한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지만 정말 특별하게 친해진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초중고 동창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명의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내 사람이라고 생각될 만한 몇몇 친구에게 집중하는 타입이라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비해 정말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많지 않다. 은근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경향도 있어서 마음의 울타리도 확실한 편이라 내 사람들에게는 올인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삶은 점점 더 바빠지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을 챙기고 싶어도 결국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만 챙기기도 벅찬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성향의 사람일수록 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집중적으로 큰 경향이 있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내 사람들한테 만큼은 언제나 관심이 많고 의리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최근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학창 시절 친구 두 명을 잃고 나니 마음이 한동안 공허했다. 아무래도 애정이 있는 만큼 내 사람들과 멀어졌을 때의 타격은 작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잃은 게 아니라 내가 놓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수 있겠다. 내가 만약 계속 노력한다면 그들과 다시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점점 나이가 들수록 친구 사이에도 무너질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두 명 중 한 명의 친구는 이혼을 하고 연락이 끊겼고 한 명은 정신 질환으로 인해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이혼을 한 친구의 경우는 그 친구가 내 연락을 거부했고, 정신 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경우는 나도 끝까지 노력해 주었지만 아직은 회복되지 않아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어 내가 연락을 끊게 되었다. 연락을 끊으니 자연히 관계도 끊기게 되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소통하고 지내지 않는다.
누가 먼저 연락을 끊었는지 보다 결론적으로 정말 소중했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나니 한동안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정작 학창 시절에는 많이 친하지 않았던 다른 친구들과 더 편하게 연락하고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깨달았던 점은 아픔이 있으면 아무리 가까웠던 친구여도 어쩔 수 없이 관계 유지가 힘들어진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행복까진 아니더라도 적당히 무탈하게 살고 있으면 일 년에 한 번은 편하게 만나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는 시험 성적으로 서로를 비교하며 누가 더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질투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우리는 성적대로가 아닌 각자 성향대로 정말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각자의 위치에서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행복한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언제든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며 웃을 수 있다. 반면 너무 마음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면 아무리 친했던 친구라도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30대가 된 지금은 내 사람들일수록 모두가 정말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각자의 바쁜 삶 속에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웃으며 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