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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새댁 Mar 21. 2024

자연분만 후기를 글로 담는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업적.

 지난 3월 8일 우리 딸이 태어났다. 엄마의 촉이란 참 무섭다. 뭔가 우리 딸은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나의 촉은 빗나가지 않았고 37주에 산부인과 검진을 갔을 때 주치의께서 38주에 유도분만을 진행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초산인데도 40주를 다 채우지 않고 임신 38주 2일에 알콩이(태명)가 태어났다. 


 난 알콩이를 만나기 위해 38주 1일과 2일 이틀간 유도분만을 진행했다. 3월 7일 유도분만 첫날에는 8시간 동안 촉진제를 투여했지만 진행이 잘되지 않아서 저녁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3월 8일 새벽에 다시 입원을 해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촉진제를 투입했다. 그러던 중 오전 11시 즈음 양수가 터졌고 양수가 터진 이후에는 마치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겪은 후 오후 3시 28분에 알콩이를 만날 수 있었다.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듯한 극심한 고통. 바로 이 고통이 어떤 느낌일지 나는 출산 직전까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다들 출산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지레 겁을 주는 표현들로 시작을 하기 때문에 그냥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젠 내가 직접 겪어보니 이 고통에 대해 논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이 되긴 한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나는 성격상 내가 곧 겪게 될 일은 알고 겪는 걸 선택하는 타입이라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우선 출산의 고통은 단계적으로 찾아온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고통이라기보다 점점 강도가 세진다. 처음엔 마치 생리통처럼 살살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생리통의 천배 가까이 되는 수준의 고통으로 진화된다. 나는 평소 생리통도 배보다 허리로 오는 사람인데, 출산할 때도 잊지 못할 통증을 호소하게 한건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출산한 지 13일이 지난 지금도 그 허리 통증의 고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간절하게 무언가를 애원해 본 적이 없었는데 허리 통증이 강도가 높아지면서 정말 간절히 무통주사를 찾았다. 하지만 나의 경우 총 15시간 30분의 진통 중에 무통 주사는 한번 맞을 수 있었다. 자궁문이 4~5cm 정도 열렸을 때 무통주사를 맞았는데 효과가 2시간 30분 정도 지속되었고, 무통 주사 효과가 끝났을 때 이미 자궁문이 다 열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분만을 준비하기 위한 힘주기를 바로 돌입해야 했다. 


 나는 자궁문이 다 열리면 금방 힘을 주고 아기가 태어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자궁문이 열려도 아기가 높이 있거나 아직 내려오지 않았으면 분만 직전의 상태가 될 때까지 최대치의 고통을 감당하며 고통이 밀려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힘을 줘야 했다. 그렇게 버텨낸 약 1시간 30분 동안의 고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분만 직전까지 고통의 강도는 끝을 모르고 달려간다. 그때 찾아온 고통을 자세히 서술하자면 나의 경우는 허리에 먼저 고통이 찾아오고 그 고통이 배로 이어진 후 마지막에 항문을 누르는 고통으로 연결되었다. 자연분만을 하면 힘을 줄 때 대변을 보는 느낌으로 힘을 주라고 하는데 항문을 누르는 고통이 찾아오면 오히려 힘을 줘야 덜 아프게 된다. 정말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아픈 대변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항문 쪽에 힘을 줘야 아기가 점점 내려온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내다보면 어느새 간호사 선생님들이 주치의께 콜을 한다. 주치의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며 힘주기는 계속된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주치의 선생님의 여유 있는 입장과 코멘트. "이제 곧 나와요." 그때는 이미 지옥과 천국을 넘나들고 있어 모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힘이 빠지는 순간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 배를 위에서 누르기 시작한다. 배를 누름과 동시에 최대한으로 힘주기를 몇 번을 더 반복하다 보니 힘을 빼라는 말씀이 들렸다. 그렇게 힘을 빼고 잠시 후 나는 알콩이를 만날 수 있었다. "오후 3시 28분 알콩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들리는 울음소리. 계속 진행되고 있는 후처치. 몸에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자연분만의 고통은 사람마다 다른 유형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배가 많이 아프고 어떤 사람은 나처럼 허리가 더 아프다. 본인이 어떤 경우에 해당이 될지는 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허리 통증의 경우 출산 전 미리 연습하고 간 통증완화 호흡법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배로 통증이 찾아올 때와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통증 단계에서는 호흡을 하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허리 통증이 심해질수록 호흡법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연분만을 앞둔 임산부라면 어떤 경우에 해당될지 모르니 통증완화 호흡법은 꼭 미리 연습해 가길 추천한다.


 자연분만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경우 두세 시간 이후부터 일반 식사도 가능하다. 출산을 하고 그날 먹은 첫끼 저녁밥을 잊지 못한다. 병원에서 나온 평범한 밥이었지만, 전쟁에서 무사히 승리하고 돌아와 먹는 첫 식사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회음부 절개로 인해 새로운 통증이 있었지만 출산의 고통에 비하면 참아 낼 수 있었다. 


 아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출산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면서도 문득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얼굴 실핏줄이 다 터지고 오른쪽 눈의 핏줄도 터져서 얼굴 상태를 회복하는데만 10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지금은 전반적으로 많이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니 이 기억이 이렇게 생생할 때 꼭 출산 후기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연분만은 정말 너무 큰 경험이었다. 그런데 분명한 건 태어난 아이를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격스러운 마음과 사랑이 샘솟는다. 출산의 고통은 지옥이었지만 알콩이를 보면 천국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콩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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