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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새댁 Mar 14. 2024

30대가 되면 어른인 줄 알았지.

이건 내가 상상하던 30대가 아니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20살, 드디어 교복을 벗고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들고 다니며 주점의 음악소리만 들어도 설레던 나이. 그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렜지만 반대로 참 막연했다. 정식 성인이 되고 나니 부모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이제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무겁게 들리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그래야지 싶은 생각 정도였다. 그런데 마냥 즐거운 대학 시절이 지나가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점점 내 선택 뒤에는 무거운 책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다. 나의 선택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는 걸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제대로 체감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여전히 20대 중반의 이제 막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아직은 어린 나였다. 그렇게 20대 후반이 되고 나니 패션 분야에서 MD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았던 나는 연차가 쌓이며 대리급이 되고 막연하고 두렵기만 했던 사회생활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보기도 하고 치열한 경쟁도 해보고 좌절도 하고 인정도 받으며 어느새 더 이상 신입이 아닌 나름 괜찮은 패션 MD가 되어 있었다.


 커리어에 안정기가 찾아오니, 30대가 너무 기다려졌다. 20대에 힘들게 쌓아온 커리어가 30대에 비로소 진정 꽃을 피울 것 같았다. 봄에 꽃이 만개하듯이 나의 커리어 전성기는 30대부터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30대는 고민투성이었던 20대와 달리 매우 안정적일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30대의 나는 여전히 고민투성이었다.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인생의 막연함과 고민은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인지.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고 표현했던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20대의 산을 다 넘어오니 30대의 산도 만만치 않게 높았던 것이다.


 30대가 되자마자 새로 봉착한 고민은 바로 '결혼'이었다. 내가 결혼을 빨리 하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나를 보면 연애는 하고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인지 등에 대해 매번 질문하셨다. 당시 빨리 결혼할 생각이 없던 나는 그 질문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었다. 결혼을 하기에 나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고 그냥 지금 이대로의 삶이 편했기 때문이다. 부족함 없이 편한 느낌이랄까. 어쩌면 그냥 이게 익숙해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내 싱글 라이프를 매우 즐겼다.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기 시작했지만 마음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그냥 지금 나의 싱글 라이프가 너무 풍요롭고 만족스러웠다. 이제 커리어에 안정을 찾아 인생을 즐겨보려 하는데 결혼이라니. 20대의 나와 고민의 내용은 달라졌지만, 30대의 나는 여전히 새로운 고민거리로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원하게 싱글라이프를 즐기면서 현재의 남편과 정말 즐거운 연애를 했다. 우린 나름 여러 분야에서 코드가 맞았고 다양한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다 혼전임신을 하는 순간 한 가지 고민이 해결됨과 동시에 새로운 고민에 봉착했다. 혼전임신을 해서 3달 만에 결혼을 하며 결혼에 대한 고민은 해결되었지만, 임신 기간 10개월 동안 새로운 힘듦을 경험하며 불규칙한 호르몬에 지배당했다. 울다 웃다 하는 그런 10개월의 임신 기간. 그리고 지난주 3월 8일 출산까지.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에 다시 봉착했다.


 태어난 딸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볼 때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인생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마치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이 앞에서 나는 허둥지둥하는 초보 엄마일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잘해나갈 수 있을지 모든 게 다시 막연해졌다. 지금 산후조리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방금까지 아이에게 젖병을 잘 물리지 못해 겨우겨우 초유를 먹이고 지친 상태이다. 언제쯤 '엄마'라는 커리어에 안정기가 찾아올지. 막연하고 빨리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자꾸 조급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이 점점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각기 다른 이유로 30대가 된 지금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다. 분명 30대가 되면 어른인 줄 알았는데 여전히 각자의 앞에 마주한 산을 오르며 끝없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그나마 나만 이런 게 아니라서 조금은 위로가 되고 서로 위안이 된다.

"이건 내가 상상하던 30대가 아니야."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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