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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May 20. 2024

good bye, gentlemen

PL 23~24 끝. 굿바이 티아고 실바, 클

어제, 그러니까 5월 19일 밤 11시에, 난 아이패드를 켰다. 

PL의 마지막 라운드를 보기 위해서였다. 올해 리그는 여러모로 볼거리가 풍부했다. 

요번 시즌 중계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이번 시즌 마지막 라운드만큼은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첫 번째로는 4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샘이 나서 아스날을 응원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리버풀의 클롭 감독과 첼시 소속의 티아고 실바 선수의 마지막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마지막으론 내가 좋아하는 첼시가 리그 5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를 보고 싶었다. 


리그 4연속 챔피언을 노리는 맨시티, 팀 빌딩이 끝나 몇십 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아스날, 그리고 명장 '클롭'의 마지막 시즌인 리버풀. 이 세 팀이 리그 초반부터 후반부까지 우승 레이스를 펼쳤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누가 우승할지 정말 끝에 끝까지 알 수 없는 리그였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승점을 얻어내지 못한 아스날과 리버풀은 왕좌에서 조금씩 밀려났고,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맨시티와 아스날의 조건부 우승 경쟁이 시작되었다. 


맨시티가 이긴다면 아스날은 승패와 관계없이 우승에 실패하는 상황이었다. 아스날을 응원하던 나는 '제발 맨시티 한 골 먹혀라 제발. 제발 우승 좀 그만해'라는 마음으로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근데 웬걸. 경기 시작 1분 만에 맨시티 소속 '시티 보이' 필 포든이 골을 넣었다. 기세를 보아하니, 우승은 맨시티겠군....씁쓸했다. 아스날은 우승 경쟁에 희망을 살려야 하는 와중에 선제골을 먹혔다. 지금 골을 넣어도 모자랄 판에 골을 먹히다니. 전세계 구너들 복장 터지는 소리가 내 아이패드에서 들리는 듯했다. 나중에 역전을 하긴 했지만, 이미 맨시티의 경기 승리가 유력해진 상황. 우승 트로피를 눈앞에서 놓쳐 굉장히 속이 쓰릴 아스날이었다. 


리그 우승의 행방이 정해진 가운데, 난 첼시의 경기를 먼저 보러 갔다. 사실 이쪽이 더 꿀잼이거든. 

원래 싸움짱들 주먹질보단 찌질이들 주먹질이 더 재밌는 법 아니겠습니까. 


리그 우승을 다투는 1,2,3 등 바로 밑에 리그 5위를 두고 토트넘과 첼시가 서로의 경기장에서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시즌 초반 엄청난 페이스를 보여주며 우승 경쟁도 가능하다던 토트넘과 역대 최악의 시즌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무너진 것처럼 보였던 첼시. 


시즌을 치르고 마지막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 그 두 팀의 승점 차이는 불과 3점이었다. 

토트넘이 패하고, 첼시가 승리한다면 골 득실에 의해서 첼시가 5위, 토트넘이 6위가 되는 상황. 5위가 된다면 유로파 국제 대회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시즌은 조진(?) 첼시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게 어디냐. 함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경기 결과는 토트넘, 첼시가 나란히 승리를 가져가며 순위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첼시의 십 년 넘는 팬으로서 굉장히 아쉬웠다. 하지만 시즌을 치르며 보였던 많은 문제점을 리그 극 후반에 극복해 보려는 모습은 다음 시즌을 조금 기대하게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첼시의 스트라이커 '니콜라스 잭슨'이 프리시즌 연습을 통해 골 결정력을 조금만 더 키운다면 꽉 찬 육각형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제발 잘해다오 잭슨...!


10명의 심판이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며, 세계 최고 선수들의 땀으로 가득 채운 PL 23-24시즌이 끝났다. 

평소였다면 아이패드를 닫고, 잠을 청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난 여전히 경기가 끝나 그라운드를 찍는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오늘이 티아고 실바 라는 선수가 첼시 소속으로 뛰는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다. 

첼시에 온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선수였지만, 굉장히 애착이 가는 선수였다. 아역배우 출신 '김유정' 배우와 닮은 티아고 실바는 브라질 수비수로,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첼시로 오기 전부터 '와 진짜 국밥이네. 우리 팀에 저런 수비수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수비센스, 그리고 중요한 순간 팀에게 선물하는 소중한 골들까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가리지 않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30이 훌쩍 넘은 나이에 첼시에 와서 4년 동안 보여준 엄청난 헌신은 나를 감동하게 했다. 그런 그를 이 피치에서 볼 수 있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괜히 시원섭섭했다. 첼시 팬을 13년 동안 해오면서 수많은 선수를 떠나보냈지만, 티아고 실바는 좀 더 찡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봤다. 


팀의 주축이었던 선수들 떠나보내는 내 심정도 이런데, 9년 동안 팀의 정신적 지주, 아이덴티티인 감독을 떠나보내는 팬들은 어떤 감정일까. 나였다면 정말 눈물을 찔끔 흘렸을 것 같다. 


경기 시작 전 리버풀 팬들은 'you'll never walk alone' 노래를 클롭을 위하 불러줬다. 클롭 감독은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가슴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전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인터뷰했다. 아마 감독을 그만두면서 리버풀, 그리고 팬들과 연결고리가 끊긴다고 생각해, 큰 상실감을 느낄것이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중들과 함께 클롭의 파이팅에 맞추어 환호를 해주는 장면은 가슴에 울림을 주었다. 


이게 팀 스포츠가 주는 힘인 것 같다. 서로 힘, 기쁨, 슬픔을 나누며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언제까지나 이 사람이 나와 함께 할 순 없지만, 계속해서 각자의 삶을 걸어 나가면서도 같이 걸었던 영원히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축구. 

단순한 공놀이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 내는 스포츠임이 분명하다. 


라이벌 팀이지만 'you'll never walk alone'이 노래는 너무 사기다. 타팀까지도 그들의 역사에 한 부분이 되고 싶은 매력을 느끼게 하는 곡이니. 이 곡을 들으면 리버풀 팬들에게 '리버풀라이팅'당할 것 같다.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내년 PL 24-25 시즌. 또 어떤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지 기대하며, 이번 시즌을 보내줘야 할 것 같다. 

이전 16화 운명을 바꾸자. 상상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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