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현 Jul 01. 2024

자존심이 센 엄마의 자존감


둘째를 임신했을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갑 친구로부터

집 초대를 받았다.

아줌마의 세계로 들어서고

적응을 잘 못하는 내게

많은 정보와 도움을 줬던 그녀는

결혼 8년 선배이자 애가 셋인 엄마였다.

일찍 결혼한 엄마와 늦은 결혼에 노산한 엄마의 조합이었다.


첫째 딸아이의 손을 잡고 뱃속엔 둘째를 데리고

맛있는 저녁 먹을 것을 기대하며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에 들어선 순간,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호텔이었다.

먼지 하나 없는 드넓은 도서관 같았다.

책이 얼마나 바지런히 꽂혀 있는지

이걸 내가 꺼내 읽으면 어질러질까 봐

주춤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책을 밟기도 읽기도 또 쌓고 놀기도 하는

주변에 책이 나뒹구는 그런 집이었기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깨끗한 테이블, 정리되어 있는 레고들,

인형들은 디스플레이되어 있어서

하나라도 건들면 안 될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보기에는 너~무나 예쁜..

거실의 뷰도 끝내줬지만 정리는 더 끝내줬다.

아니 어찌 애 셋인 집이 이러하단 말인가?~!

부러웠지만 이상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어지럽히지도 놀지도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저녁을 해주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음식을 그녀의 위층에 사는

친정부모님을 드리기 위해 초3 아들을 불렀다.

쟁반 위에 음식을 담은 유리그릇을 놓으며

그녀는 “또 깨트리지 말고 조심해서 갔다 와”라고 했고

초3 아들은 “네”하며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하고 나갔었다.


그리고 잠시 후

초3은 울상이 되어 그녀 앞에 섰고

그녀는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라며

격양된 목소리와 함께 쉬는 한숨에

아이는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며 몸을 떠는 것이 아닌가~

순간 놀란 나는 임신한 몸이라는 사실도 잊고

달려갔다.

가자마자 아이의 가슴에 손을 대어 문질러 주며

“놀랐겠다. 놀랐구나?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를

반복했다.

“이모도 이거 들기 힘들더라. 유리그릇이 미끄러진 거지?

이렇게 들면 누구나 떨어뜨릴 수 있어.”라고

난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 들으라는 듯 크게 얘기했다.


그런 나의 뜻을 알았을까?

그녀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하고 아들을 방에 들여보냈다.

저녁을 먹고 그녀의 아이들이 딸아이와 잘 놀아줬기에 난 그녀와 티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대화도중 그녀에게 전화가 오고..

“아~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원래 얘가 좀 그래요.

제가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듣더라고요. 아~ 정말..

자기가 생각하는 게 다인줄 알고.. 맞아요.

정말 저도 미치겠어요. “


전화를 끊은 그녀는

중학생 딸 때문에 미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 온 사람은 딸 친구 엄마인데

딸이 친구들과 다툰다는 내용이었다.

중학생들 싸움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네 딸과 얘기해 봤어?

무슨 내용인지, 딸은 뭐가 기분 나빴는지 얘기해 봤어?”

라고 묻자,

“내가 얘 고집스러운 거 알아서 그래. 정말 창피해.

그 집 엄마랑 지난주에 엄마들 모임에서 브런치 같이 먹으면서

얘기한 적 있는데 그때도 내 딸 이런 성격에 대해 얘기하더라고.

정말 창피해~”


순간 너무 놀랐다. 그래서 속사포처럼 쏘아 댔다.

“00야! 만일 내가 네 딸이라면 엄청 속상할 거 같아.

남의 얘기만 듣고 딸의 잘못으로 생각하는 거.

그것도 네 창피함 때문에.

그게 창피한 거야?

중학교 사춘기시기에는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네 딸도 엄청 속상하고

상처받았을 텐데.. 네 딸은 어디에다 푸니?

네 딸도 마음 둘 곳이 필요하지 않겠어?

자기 엄마가 덮어놓고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너는 사춘기 때 안 그랬어?”


그녀는 나보다 더 놀란 눈이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 사춘기 시기에 겪을 수 있는 마음과

‘내가 내 딸을 안아줘야 하는 마음’에 대해 떠들었었다.

딸의 서투름을 안아줄 수 있는 건 엄마뿐이라고.

아이들이 마음을 놓을 곳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냐고.

엄마가 안아줘야 그걸 느끼고, 그래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고.


이틀 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맨날 ‘불평불만’만 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 학습된 거 같다고.

자기가 그런 줄 정말 몰랐다고.

네 덕에 알게 됐다고.

그래서 딸에게 사과했다고.

고맙다고.

그래서 나도 대답했다.

내 뜻을 알아줘서 내가 더 고맙다고.



자존감은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존심은 자신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경쟁적이고 방어적인 성향이 나온다.


‘남이 보는 나’ 보다 ‘내 자식이 보는 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자!


내 아이의 자존감은 훗날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걸 잊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keep go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