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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강 Apr 06. 2024

벗과 함께 상춘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4월의 첫 휴일. 바람은 아직 차지만 낮기온은 19도까지 올랐다. 완연한 봄날. 먼 곳에서 친구가 집 근처로 놀러왔다. 커피를 내려 두 개의 텀블러 담고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도 두 줄 산 뒤 우린 서울대공원 산책에 나섰다.      


벚꽃이 절정이다. 굵고 검은 나무 위에 핀, 희고 여린 벚꽃들이 푸른 하늘을 가득 채워 눈처럼 빛난다. 상춘(賞春)! 매일 집과 직장을 오가느라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알지 못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화사한 봄이 이렇게 불쑥 내 곁에 와 있었구나.      



문제는 사람이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서울대공원엔 사람이 벚꽃잎만큼 많다. 무슨 팝가수 콘서트에 온 줄!! 사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토, 일요일에 대공원에 오지 않는다. 전국의 사람들이 다 모이니 왜 안 그러겠냐. 그러나! 오늘은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했으니 씩씩하게 인파를 헤치고 나아갈 수밖에.      


호수를 바라보며 김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하는 비상한 능력이 있으니 상관없다. 우린 밥풀을 튀기며 근황을 묻고 고민을 얘기했다. 서로의 스토리에 맞춰 공감하고 분노하고 히히덕거렸다. 이게 바로 힐링.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뿅~ 날아간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혹은 털어놓고 나니 별거 아니었네. 혹은 내 분노에 나보다 더 분노해 주는 내 편이 있으니 든든! 뭐 그런 거 아니겠나.   


   

호수를 따라 크게 한 바퀴 돌고 난 후 우린 바로 동네로 내려왔다. 아파트 단지 근처 벤치에서 남은 커피를 마시던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순식간에! 낮술을 결정했다. 인생 뭐 있냐. 좋은 날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 축배를 들어야지. 낮술엔 항상 낮술해야만 하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다. 다시 오지 않을 2024년의 벚꽃이 이렇게 아름답게 우리 곁에 왔고, 이제 곧 가려 하는데, 잘 보내야지, 안녕해야지. 게다가 우린 벌써 만 보를 넘게 걸었어. 낮술할 자격이 충분하다구!


딱 두 잔. 얼굴 붉어지기 전에 끝내는 게 우리의 대원칙. 우린 각자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길, 아파트 사잇길엔 여전히 벚꽃이 흐드러졌고, 취기가 살짝 오르니 기부니가 조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고, 그 벗과 상춘했으니, 이만하면 내 인생도 굿~! 불역열호(不亦說乎)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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