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는 독이지만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 유용했다

김기태의 〈보편교양〉

by 바다와강



"교육은 끝났어. 그러니까 엿같은 월급이나 내놔."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김기태의 소설 〈보편교양〉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마흔 살의 고등학교 교사 '곽'이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것으로, 2024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고등학교에 올해 처음 개설된 3학년 선택과목 '고전읽기'를 맡은 '곽'이 방학 내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곽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챙기고 신경쓰는 성실한 교사다.


학생들이 '고전읽기' 수업을 선택한 건 고전이 좋아서가 아니다.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이런저런 과목을 저울질하다가 '미적분'이나 '영어'를 하기 싫은 학생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은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바친다.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각자의 삶에서 이 수업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차라리 오십분의 숙면이 더 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을 교실에 가두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 아닐까. 엎드린 이 학생, 그리고 저 학생도, 억압적인 제도 교육에 대하여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속 바틀비처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그러니까 잠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처럼 대학입시가 치열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 어떤 정치인도 교육 문제에 현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조석으로 변하는 입시, 전쟁으로 내몰린 입시, 대졸이 아니면 이력서도 제출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에 취미가 있거나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설 자리는 없다. 이런 현실은 결국 학생은 물론 교사와 학부모까지 대환장 파티에 몰아넣는다.


있는 꿈도 없는 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 꿈도 있는 듯 그럴 듯하게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다.


이 전쟁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좀 다를까? 아니다. 자신이 그동안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 바로 이곳에 서기 위해서인가, 이제 난 또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나, 갑자기 방향성을 잃고 방황한다. 애초에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터라 자신이 뭘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없다. 그런 학생들에게 대학은, 사회는 '창의'와 '혁신'을 외치며 빨리 대세에 올라타기를 강권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현장에 있는 나 역시 학생들에게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지, 애초에 교육이란 가능한 건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결국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나는 왜, 지금 이 자리에 서있나. 전공과 자격증, 영어 공부에 지쳐 이미 피곤한 상태인 그들에게 '교양'이란, 특히 '문학'이란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졸업요건을 맞추기 위해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이수 시간 때문에 간신히 출석한 학생들에게 난 대체 무슨 말을 떠들어댈 것인가.


자기 연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남들은 나라 안팎으로 여행 다니느라 바쁜데 나 혼자 학교-집, 학교-집 오가느라 꽃이 피는지 지는지, 계절이 가는지 오는지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출구없는 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인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 자신이 불쌍하고 안쓰러워질 때, 그럴 때면 나 역시 '냉소'를 찾는다. 나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나를 군중 속에 넣고 일반화시킨다. 무덤덤하게, 차갑게 자신을 객관화시킨다.


"난 더이상 교육자가 아니야, 그저 직장인일 뿐이지. 누가 누굴 교육하는 시대는 지났어." 리포트나 시험 등 학업은 물론 여행, 연애, 고민 상담까지 챗 gpt와 제미나이가 다 해주는 시대에 대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김기태 작가 말대로 냉소는 자기연민을 경계하는 데 유용하다.


징징대지 마. 다들 그렇게 살아


살수록 살아 있는 시간이 아깝다. 그 아까운 시간 앞에서, 점점 더 빠르게 달려가는 시간 앞에서 가끔은 속수무책으로 누군가에게 어퍼컷을 맞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좀더 느슨하게 생을 즐기고 싶은데, 옴쭉달싹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갑갑하다. 매순간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동안 내 손은 모래만 가득 쥐었던 게 아닌가 불안하다. 내 인생이 짠하고 안쓰럽다.


하긴! 오늘밤은 이렇게 스스로를 연민하다가도, 내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냉소적인 얼굴로 출근하리라. 이렇게 연민과 냉소를 오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 어쩔 수 없다. 징징대지 말자!



#김기태 #보편교양 #자기연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