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김경미의 〈다정이 나를〉

by 바다와강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 〈다정이 나를〉 전문


김경미의 〈다정이 나를〉은 그의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비, 2008)에 수록된 시다. 이 시는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왔던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2026)에 삽입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열정과 냉정, 현재와 과거, '차무희'와 '도라미'를 오가는 극중 캐릭터와 시 내용이 잘 어울려 더욱 관심을 끈 걸로 기억한다.


'다정'이라... '정이 많아 따뜻하고 친절한 데가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 〈난 다정한 사람이 싫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를 소개한 글이었는데, 난 '다정'을 현대인이 살아남기 위해 취한 에티튜드 정도로 이야기했었다. 자세한 건 아래 링크로 읽어보시길.


https://brunch.co.kr/@efaed9028340417/17


사실 '다정(多情)'한 사람들은 정이 많아 그런지 대체로 착하다. 상대에 대한 공감과 배려도 모두 '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난 그다지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 혹자는 내가 '그다지'라는 부사어를 쓴 점에 놀라며, 날 냉정한 인간이라 쉽게 규정할지도 모르겠다.


말이 나왔으니 '냉정'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보통 냉정은 정이 없다, 차갑다, 모질다 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런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연 냉정(冷靜)은 차갑고 고요한 상태, 즉 '생각이나 행동이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침착함'을 의미한다. 다정과 냉정에 쓰이는 '정'이라는 한자가 다르다. 그러니 다정의 반대어로 냉정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듯싶다. 다정의 반대어는 무정. (으휴, 이놈의 까칠!)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 전문


고려시대 이조년은 시조 〈다정가〉를 통해, 님에 대한 차고넘치는 '정'이 결국 '병'이 되고 만 안타까운 심사를 그려냈다. 상대가 연인이든 임금이든 그를 향한 정이 넘치면, 지나치면 병이 된다. 김경미 시인 역시 이조년의 시 구절을 그대로 제목으로 내세워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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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으로 만든 기차 같죠 어디든 가겠다 하고 어디도 가지 못하죠 다정이 죽인다 매일 타이르죠 종잇장 같은 거짓말에 촛불이 닿을 듯 말 듯 촛농같이 흘러내리는 다정, 뜨거움이 차가움을 잡는지 차가움이 뜨거움을 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다정이라는 거짓말 죽지요. 죽이지요.
― 〈다정이 병인 양〉 중에서


사랑하는 이에 대한 넘치는 '정'은 그(그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설레고 떨린다. 기대하고 기다린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믿고, 믿으면서도 의심한다. 죽고 죽인다. 이것이 뜨거움인지 차가움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게 무엇이든 다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다정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당신이라는 수면 위
얇게 물수제비나 뜨는 지천의 돌조각이란 생각
성근 시침질에 실과 옷감이나 당겨 우는 치맛단이란 생각
(중략)

그러다
봄 저녁에 듣는 간절한 한마디

저 연보랏빛 산벚꽃 산벚꽃들 아래
언제고 언제까지고 또 만나자

온통 세상의 중심이게 하는
― 〈다정에 바치네〉 중에서


당신의 다정한 한 마디는 정언명령처럼 절대적이다. 그 한마디로 나는 지천에 널려 있는 흔한 '돌조각'이었다가, 하찮은 치맛단이었다가 갑자기 '세상의 중심'이 된다. 이렇듯 당신의 다정함이 내 존재를 제멋대로 규정하듯이, 당신을 향한 내 다정함은 수시로 날 변덕스럽게 한다.


촛불에 컵 덮듯 탁, 물 부어버렸다가
젖은 촛불 들고 나가 종일 바람에 말리다가
― 〈변덕〉 전문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다정은 사람을 변덕스럽게 만든다. 버렸다가 주워들고, 애지중지하다가 내던진다. 자존과 자조를 오가며, 차가웠다 뜨거웠다하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 그러기에 누가 다정하면 상반된 감정을 다스리느라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온 하늘을 뒤덮은 아름다운 일몰을 볼 때처럼, 아찔한 라일락이나 장미꽃 향을 맡았을 때처럼, 모든 절정의 감정들은 양가적이다.


나는 늘 빗나가는 꿈을 꾸지 라일락 꽃피는 오후에 세상은 항상 내 꿈과 다르고 세상도 나를 꿈꾸지 않을 것 같은 미몽의 달 I don't belong here
―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중에서


누군가는 다정함이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친화력이야말로 인류의 진화 동력이라고. 맞다. 거대한 인류의 역사를 놓고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사적인 관계 속에서도 친절한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평판을 얻는다. 그러나 대상이 단 하나인 사랑 앞에서는 다정이 '병'인지라 날 죽도록 힘들게 한다. 다정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다정이 가져다주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향방 때문에 널뛰고 방황한다. 우우, 피곤쓰! 그러니 내가 일찌감치 다정과 담쌓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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