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하덕규의 〈풍경〉

by 바다와강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 하덕규의 〈풍경〉 중에서


하덕규의 〈풍경〉은 1989년에 발매한 음반 《Forever Best 001》 CD3에 실린 곡이다. 세상에 이토록 심플한 가사와 리듬이 있을까. 노래는 동일한 가사와 리듬이 심심할 정도로 반복된다. 하고많은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니. 한없이 단순하면서도 철학적인 의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 중에서


하덕규의 〈풍경〉을 듣고 있자니 젊은 시절, 장거리 운전할 때마다 들었던 들국화의 노래 〈사랑한 후에〉가 저절로 따라온다. 이 곡 역시 《Forever Best 001》 CD2에 실려 있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노을이 지면, 집집마다 전등이 켜지고 된장찌개 냄새가 폴폴 난다. 잠시 후 사내아이들을 키워 목청만 커진 엄마들이 창문을, 대문을 열고 소리친다.


"아무개야, 밥 먹어~!"


놀이터에서 놀던 아무개들은, 한두 번은 못 들은 척하다가 엄마 목소리의 옥타브가 두세 계단 올라갈 때에야 결국 모래 묻은 손을 바지에 쓱쓱 닦으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풍경들. 맞다. 심심하고 지루해서 아름다운 것들. 반복이 주는 안정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집이야말로 내가 있을 '제자리'. 가장 편안하고 솔직한 1차원적 공간이다.


아무리 여행이 좋아도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랑일 뿐이다. 정주할 나만의 공간을 갖고 있고, 그 공간 안에 나만의 질서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다면, 계획한 대로 일상이 착착 흘러간다면, 그건 이미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인생이다.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 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으로 살다 갈 것을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하덕규의 〈한계령〉 중에서


하덕규의 〈한계령〉 역시 더이상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원래 내가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이제 그만 모든 걸 잊고 내려가라고 한다. 강원도 홍천 출신 하덕규는 지칠 때마다 한계령을 찾아가 위로받았다고 한다. 한계령 역시 정처를 찾지 못해 나부끼려는 시인의 마음을 안아 달래며, 내게 와 충분히 울었으니 눈물닦고 다 잊고 떠나왔던 곳으로 가라고 그를 돌려세운다.


그렇다. 어차피 '휴식'은 잠시일 뿐 다시 나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쉼표(,)는 완성형이 아니다. 휴식이 길어지면 역설적이게도 휴식의 고유한 의미를 잃는다.


살수록,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한다


지금쯤 노을이 지려나. 나 역시 오늘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컴퓨터와 스탠드를 끄고 책상 위를 정리한다. 새털 같은 많은 날들 중 또 하루를 살았다. 오늘 하루, 그닥 언짢은 일도 없었고, 실수한 것도 없다. 아프거나 속상한 일도 없었다. 뭐 레이저 포인터를 잃어버리긴 했으나 곧 찾으리라 믿는다. 이만하면 된 거다.


살.수.록,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한.다. 아침에 나왔던 곳으로 핸들을 돌린다. 저녁 풍경이 아름답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곳에서 다 큰 아들이 날 위해 따뜻한 파스타를 준비하고 있다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



#하덕규 #풍경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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