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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May 28. 2024

방황의 종점

서울특별빌라 시리즈 5 (101호의 시점)

"학생, 어서 일어나요. 여기 종점이야 종점."

내 어깨를 흔드는 손이 느껴진다. 거칠고도 익숙한 일인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나는 취기와 노곤함에서 깨어나 눈을 번쩍 뜬다. 지하철이다. 아무도 없는 지하철. 아니, 나와 청소 아주머니만 존재하는 종점의 풍경이다. 아주머니는 내가 눈을 뜬 것을 보더니 빠른 솜씨로 바닥을 쓱싹쓱싹 윤기나게 닦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일어난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에 곧바로 휘청인다. 그렇지만 나는 우아한 솜씨로 넘어지지 않고, 휘청이면서 자연스레 지하철을 벗어나 플랫폼의 벤치에 앉는다. 아무래도 생각을 정리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일까? 주변을 둘러본다. 파란 간판에 대문짝만한 글씨로 적혀있다. ‘오이도’ 젠장, 나는 오이도까지 와버렸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오이도 혹은 당고개까지 왔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이제 계절에 한번은 꼭 해야 하는 의식이었다.


나는 벤치에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린다. 손을 파리처럼 비벼 열을 만들고 눈에 대어 눈에 열기를 전해준다. 어젯밤 과음의 영향으로 안구가 건조하고, 속은 타들어갔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난 밤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지난 밤 분명 서울에 있었다. 그리고 술 약속 이후에 내 자취방 서울특별빌라에서 본가 과천으로 향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래, 계획상으로는 분명히 나는 지금쯤 엄마가 해준 고등어조림에 따듯한 밥 한숟갈을 입에 집어넣고 있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101호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번 새벽에 공동현관이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고 투덜거릴 타이밍이기도 하였다.


물론 나도 안다. 주민들도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면이 있기는 했다. 내가 실내에서 흡연을 하는 것은 비밀이었지만, 냄새는 퍼져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매번 새벽에 남, 여자친구를 데리고 공동현관을 시끄럽게 오고가는 주민들에게는 씸쌤일 것이었다. 나는 생각을 더 해보았다. 내가 어쩌다가 종점에 왔는지를 파악하려면 다시 어제의 일로 돌아가야한다. 물론 뻔한 일이다.


나는 친구들과, 그래 오랜만에 만나는 군대 선후임들과 처음에는 어색한 듯 이야기를 시작하다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자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떠들썩했었다. 서울 어디였는가 하면, 그래 종로였다. 다들 한강 북쪽에 산다는 이유로 강남권은 가기 싫어하였으니, 서울 전통의 중심가, 종로로 가는 것이 도리였다.


총천연색으로 반짝이는 네온사인들이 보였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술집 앞 거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얼마 전에 건강을 생각한다고 바꾼 전자담배였다. 삐까번쩍하니 예쁜 녀석으로 골라둔 내 전담을 본 친구들이 이 새끼 저 새끼하면서 토를 달았었다. 나는 연초를 피는 녀석을 한껏 비웃어주었다.


"새끼야, 아직도 연초가 뭐냐 연초는, 대세는 전담이야."


" 뭐래, 전담충이, 군대적 버릇나오냐? 나 느그 후임 아니다 이제"


나는 슬쩍 기분이 나빠지려 그랬다. 나는 젊은 꼰대로서, 한번 후임은 영원한 후임이고, 한번 후배는 영원한 후배로 여겼다. 그리고 후배든 후임이든 선배님에게는 항상 싸바싸바 맞춰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인생지론이었다.


그 표정을 본 후임자식, 이철현이는 나에게 쯧쯧하는 소리를 내더니 젊꼰 나셨다고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개가 짖으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표정이 찌푸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담배타임이 끝나고 다시 술집에 들어가 어묵탕을 먹었다. 역시 술자리에서는 탕 하나가 있어야 한다고 철현이 말했다. 나는 술자리고 뭐고 니들 중에 한 놈이라도 여자친구가 생겼다면 당장 여자친구 썰이나 풀라고 추태를 부렸다.


약간 부끄러워진다. 전후사정이 명백해진다. 나는 술을 겁나게 마셨다. 그리고는 종점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고이 잠들어 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일단 이 곳이 종점이든 아니면 내 본가인 과천이든 일단 국밥이나 먹고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숙취가 진하게 몰려와 세상이 살짝 노랗게 보이는 지경이다. 나는 지난 밤 내가 토를 했는지 기억해본다. 아무래도 한 번 내지는 두 번 비둘기들에게 만찬을 베풀었던 것만 같다. 또 한 번 낮이 뜨거워진다. 나는 내 감정을 일단 치워버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을 통과해 밖으로 나온다.


햇볕이 선명하게 내리쬔다. 불어오는 바람에는 풀냄새가 배어 향긋하게 코를 간질인다. 나는 재채기를 한다. 어제 과음한 사람에게 봄바람은 사치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광합성이 아니라 국밥과 숙취해소제였다. 나는 현실주의적인 발걸음을 내딛으며 국밥집을 찾아 헤맨다. 빌어먹을 오이도역에는 국밥집이 거의 없다.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지도를 본다. 국밥을 쳐보니, 나오는 집이라고는 적어도 30분은 걸어야 할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냐, 대학교를 휴학하고 놀고먹는 재미로 반년을 허비하기로 마음먹은 자식이 아니었던가. 놀고먹는 데에는 낭비가 필수적이다. 나는 당장 택시를 잡기로 마음먹는다. 역전이라 사람이 택시를 기다리지 않고, 택시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량을 베푸는 마음으로 택시 정류장 첫 번째 순번에게 나의 목적지를 말한다.


나는 국밥집 앞에 내렸다. 배곧이다. 신도시라 그런지 말끔하다. 말끔한 거리에 저 멀리서 불어오는 해풍이 은근히 느껴진다. 예민한 꼬라지에 예민한 위장 꼴이 짜증이 난다. 나는 국밥집으로 향한다. 아 저 앞에 한 아저씨가 보인다. 사실 아저씨보다는 아저씨가 꼬나물고 있는 담배가 눈에 보인다. 담배 한 모금, 걸음 한 걸음, 그리고 연기 후우 한 번. 아저씨는 패션쇼장의 모델처럼 주변에 자신의 존재감을 넉넉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수컷 공작처럼 쓰잘데기 없는 장식을 달고 있는 꼴이기도 하다. 아저씨가 등을 보이고 내 앞을 걸어가며, 해풍에 담배연기를 시골인심마냥 넉넉히 넣어주는 동안,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아저씨를 향해 흔든다. 웃음이 나온다. 나 자신이 우습고, 저 아저씨는 한심스럽고, 우리 둘을 쳐다보며 미묘한 긴장을 느끼는 행인들은 미어캣들 같다.


나는 국밥집에서 순대국밥을 허겁지겁 시킨다. 순대국밥이 나오는 약 10분이 영겁과 같이 느껴진다. 나는 그 동안 옆의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나 사올까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숙취해소제를 발견한다. 이런 기특한 녀석, 나 자신을 한껏 칭찬해준다. 철저한 준비만이 험한 세상에서 군자의 도리이니 말이다.


휴대폰이 웅 하고 울린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본다. 정산요청이다. 어젯밤의 총무는 김성환이었다. 군대 시절 나를 은근슬쩍 갈구던 선임자식이 흔쾌히 총무로 카드를 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바로 송금을 해주려다가 잠깐 멈춘다.


어젯밤을 생각하니 기가 찬 일이 하나 있었다. 어제 1차로 갔던 헌팅포차에서 우리 모두가 허탕을 치고는 성환이 카드를 냈었다. 근데 성환이 폰을 자리에 두고 오는 바람에 내가 흔쾌히, 배려심 넘치게, 언제나처럼 성환의 폰을 가지고 왔었다. 폰을 들고 가게를 나서려는 그 때에, 성환의 폰이 울렸다. 결제내역이었다.


-여기좋아 헌팅포차 200,390원, 잔액 50,079,172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몇 살이더라? 군대를 막 전역했고, 1년도 지나지 않았고, 한국나이로는 23살이었던 게 순간 기억이 나지 않을 뻔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흥생활을 근근이 해나가고 있는데, 성환은 지금 5천만원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황당했다. 이 사실은 화살표가 되어 내 심장을 찔렀고, 찔린 상처에서는 질투라는 감정이 보였다. 저번 학기 전공 강의에서 들었던 증여세니 한도니 하는 얘기가 기억이 났다. 아무래도 성환은 증여를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질투났다. 질투가 나고 허탈하였다. 술이 조금 깬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서울특별빌라 근처 편의점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고작 최저시급보다 1000원을 더 얹어주고는 생색은 엄청나게 많이 내는 점장의 얼굴이 두둥실 떠오른다. 나는 야간알바로 매번 생활패턴을 뒤집어 까며, 손놈들의 물건을 계산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성환은 그럴 고생을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짜증이 난다.


내 상처난 마음은 여전히 피부가 벗겨져 있다. 흉터가 진 곳의 이름은 질투, 질투는 곧 죄악이며, 증여는 더 큰 죄악일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은근슬쩍 백원 단위를 절삭해서 보내는 편이 내 마음에 평안을 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라 경제는 빈민을 구제하고 부자를 증세하는 쪽으로 올바르게 나아갈 것이 흥명나게 느껴졌다.


나는 돈을 얍삽하게 송금해버리고 국밥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운다, 그리고는 단 게 땅겨 옆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2인분 시킨다. 아이스크림은 역시 초콜릿 맛이 옳았다. 민트초코니 하는 사파들의 말은 유념치 말아야 하며, 아이스크림을 혼자 먹는다면 2인분은 넘게 시켜야 하는 것이 강호의 도리였다. 암암, 나는 스스로의 영특함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아이스크림을 먹다보니, 어젯밤 토를 했던 형체가 살짝 기억이 나려고 한다. 고개를 얼른 좌우로 흔들어 그 상상을 저 멀리 치워버린다. 그렇지만, 어제의 기억은 이미 봇물처럼 나의 뇌에 들어온다. 어제 역으로 갈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야 길빵충!"


성환의 목소리였다. 나를 감히 길빵충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환이었다. 나를 은근슬쩍 갈구었던 것도 성환이었고, 증여를 받아 나라의 경제에 기생충마냥 얹혀사는것도 성환이었다. 그렇지만 더 화나는 것은 성환이 감히 나를 길빵충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데에 있어서 선이 있었다. 생긴지 얼마 안된 선이기는 했지만 나의 신조였다. 그건 바로 주위 사람들을 위해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전자담배는 몸에 덜 해로우니 괜찮았다. 뭐가 괜찮냐고? 술 취한 나의 정신이 이르기를, 길에서 걸어가며 피워도 된다는 뜻이었다.


"야 저 새끼 옆에 붙지마, 개쪽팔려"


이번엔 내 영원한 후임, 사랑스럽지만 가끔 애완견마냥 주인을 무는 철현이었다. 쯧, 하나뿐인 선임에게 저 새끼니 뭐니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그가 안쓰러웠다. 나는 니코틴이 몸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뉴런이 전기로 빛나는 느낌이었다. 숨이 더 자유롭게 쉬어졌고, 내 자신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렇게 니코틴에 취해가며 역으로 걸어갔다. 내 일행들은 내 등 뒤에 있었다. 내가 리더가 되는 것이 당연하니, 이 또한 아이스크림의 2인분 법칙처럼 도리였다. 나는 그렇게 역을 향해 걸어갔었다. 내가 갈 곳이 과천이 아니라 오이도가 될 줄은 모른 채로, 내가 종점에 가게 될 거는 꿈에도 상상치 못한 채로, 길거리에 자욱하게 연기라는 방점을 찍은 채로, 나는 고요히 걸어갔다. 이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회상을 마치고 나니 기분이 더러워진다. 군대 선후임 자식들은 집에 잘 돌아갔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웬만하면 나처럼 종점에 쳐박혀서 청소 아주머니에게 단잠을 깨기를 기원해주었다. 나는 배곧이 싫어졌다. 국밥도 더럽게 맛이 없었고, 왠지 모르게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도 맛이 더 없는 느낌이다. 나는 본가로 가려는 계획을 접어두고, 내 집, 진짜 눈치보지 않을 수 있는 곳, 서울특별빌라로 향하기로 한다. 과천에 가봤자 별 재미도 없을 게 뻔했다.


나는 가는 길에 전자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어차피 싸구려였다. 그리고 연초의 진짜 향을 전자담배는 이길 수 없었다. 나는 진짜로 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선후임과의 더러웠던 재회를 전자담배에 담아 버려버리고, 나의 집 서울특별빌라 101호에서 담배를 맛있게 들이키고 싶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돌아간다. 약 2시간이 걸리는 시간동안 멍하니 필름처럼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는다. 아직 조금은 숙취가 남아 기분이 더러웠다. 얼른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데 빌어먹을 지하철은 끔찍하게도 느려서 거북이마냥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인내한다. 인내하며 숙취를 감내했고, 도를 닦듯 2시간의 시간을 버틴다. 나 김철민, 장하게도 오늘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공동현관 앞에서 멈추어 선다. 공지가 하나 붙어있었다. 공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집주인이 붙인 공지는 이번에는 꽤나 길었다. 그렇지만 나는 긴 글은 세줄 요약하지 않으면 읽지 않기로 결심하였으니, 제목만 본다. 저격 당한 기분이다. '실내 흡연금지'라고 적혀있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다. 내 방인데 내가 알아서 하는 게 권리인 것이 자명했다. 마치 철현이 영원히 내 후임으로 내 앞에서는 기어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방은 여전했다. 회색 벽지에 회색 침대, 그리고 회색 냄새가 배인 벽지까지 여전하다. 나는 방에 돌아오자마자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고 불을 붙인다. 후우 들이키고 연기를 내뱉는 과정이 즐거웠다. 내 숨에 집중하는 명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윗집, 201호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아 씨 또 담배냄새 나"


"도대체 누구야? 맨날 담배 ×나 펴대네 내가 언젠가는 잡아낸다."


여자 둘의 음성이었다. 나는 윗집에 사는 사람이 여자인 것에 안도한다. 우람한 남성이었다면 이렇게 흡연의 자유를 만끽하고 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숨을 내뱉으며 윗집 여자한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 때,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비상상황이다. 나는 인터폰의 카메라 기능으로 누군지 살펴본다. 최악의 상대다. 잔뜩 독이 오른 볼, 먹은만큼 솔직하게 찐 뱃살. 집주인이다. 나는 일단 황급히 담뱃불을 끄고 집에 없는 척 기척을 숨긴다. 그렇지만 우리 집주인이 누군가, 세입자의 권리는 개똥으로 아는 욕심쟁이 두꺼비가 아니었던가. 그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삡삡삡 소리가 끝나고 문이 열리는 찰칵 소리가 난다. 이사 오고 나서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나의 잘못이다. 나는 집주인과 눈이 딱 마주친다.


나는 순간 깨닫는다. 윗집이 여자라고 좋아할 것이 아니었다. 교활한 윗집이 집주인에게 민원을 넣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윗집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저주를 퍼붓는다. 그리고는 집주인을 꼴아뷴다.


"아고 이게 뭔 냄새야. 학생 혹시 담배펴요?" 집주인이 말한다.


"아니, 하도 누가 실내에서 흡연을 하는 것 같다고 민원이 들어와서 한번 보러왔더니, 학생이었구만, 거 실내에서 담배를 왜 펴요."


"왜 남의 집에 맘대로 들어오세요? 이거 불법이에요." 나는 응수한다. 나는 절대로 지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실내 흡연을 한다는 것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나는 끝장이다.


"그러면 실내에서 담배피는 건 뭐 합법이고?" 집주인도 지지않았다.


"주거침입죄라고 알아요?" 내가 응수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찬다. 방음은 개나 줘버린 서울특별빌라에 내 실내흡연이 다 소문나버린 것이다. 말소리는 전부 나를 지목하고 있다.


"담배냄새 찾았나봐 누군지."


"집주인 아님? 다크나이트 납셨다."


"101호네 여러분 101호에요!"


나는 내가 불리한 상황임을 인지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집주인의 주거침입죄는 죗값을 치르지 못할 것이고, 내 실내흡연만이 온세상에 퍼져나갈 것이 자명하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 안필게요. 안피면 되잖아" 나는 은근슬쩍 말을 놨다.


"안 피면, 냄새 배고, 지금까지 피해본 건 손해배상 어떻게 할건데 학생.?" 집주인이 기세등등해져가지고는 말했다.


"파출소 가, 그러면? 조용하고, 우리 둘 다 잘못했으니까,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집주인이 세입자 방 한 번 볼 수도 있지."


"그러면, 어디 한번 파출소 갑시다. 가면 되겠네. 여러분 집주인이 주거침입을 합니다!!" 나는 소리친다. 서울특별빌라의 웅성거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도 근데 집 맘대로 들어가면 안되는 거 아님?"


"아 비밀번호 바꿔야겠네. 집주인때문에."


"근데 주거침입이 더 큰 죄 아니냐."


집주인의 얼굴이 붉어진다.


"좋아요 학생. 없던 일로 하자고. 대신, 앞으로 실내에서 담배피면!! 바로 파출소 갈거야! 파출소 코앞인거 알지?"


"그래, 알았으니까 이만 가세요. 담배 안필테니까." 내가 응수한다. 극적인 타협이었다. 서울특별빌라의 모두가 증인인 순간에 우리 둘은 동시에 회개받는 것이다.


그때, 어딘가에서 큰소리가 들려온다.


"101호 엿먹어라!!" 나는 순간 털썩 주저앉는다. 내 길었던 방황의 시절이 끝나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끝을 맺는 날이다. 우리의 죄가 사해지는 날, 우리 모두가 누가 범인인지 알게 되는 날, 그리고 내 기분이 엿같은 날이다.


내 머릿속에서 내 영원한 후임, 철현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누가 군대적 버릇을 못 고치고 있니. 너 거기서도 욕 뒤지게 많이 먹었잖아. 이제 좀 사람답게 살자.'


또 내 선임이었던 성환도 한 마디 거들었다


'돈 없으면 열심히 좀 살자.' 머리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나는 내 방황을 멈출 때가 되었다. 서울특별빌라의 문제아로 남는 것이 두렵다. 원래라면 남의 시선 따위 절대 의식하지 않았을 나였다. 그렇지만 이런 나도 집 건물 전체의 야유는 참기 어려웠다. 나는 결심한다. '그래, 이제 방황은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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