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밑에는 바닥이
서울특별빌라 시리즈 9(완)(313호의 시점)
아! 누군가가 나를 이곳에서 꺼내주었으면 한다. 아득한 곳으로 부터 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머리 위에서는 남녀가 오붓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가 내려온다. 등 뒤에서는 연필로 누군가가 사각사각하며 필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이렌 소리가 도시의 동맥을 따라 흘러간다. 사이렌소리는 점차 낮아진다. 거리가 멀어지는 탓이다. 사이렌은 나의 청각에 접지된다. 내 귀도 위험신호를 내뱉어낸다. 삐-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위도 아래도 아득한 곳도 아니다. 내 귀 안쪽에서 울림이 들려온다.
나는 귀를 막는다. 소용 없는 짓인 것을 알면서도 무한히 반복되는 습관이다. 내가 손가락으로 봉한 구멍 밑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여름철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처럼 지독히도 시끄럽데 울려댄다. 삐-하는 고음과 우웅-하는 저음이 한데 어우러져 소음의 오케스트라를 이룬다.
우웅-하는 소리는 내 기분의 저음이다. 나는 어떤 소리도 울리지 않는 무반향실에 엎드려 앉아있다. 무반향실 너머로 소리가 들린다. 오래된 기계장치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리이다. 우웅-하는 소리가 벽을 뚫고 넘어와 무반향실에 묻는다.
나는 무반향실의 비유를 상상한다. 지금 내가 있는 서울특별빌라 313호의 음향과는 정반대인 무반향실을 상상한다. 한때 청력검사를 하러 그 방에 들어갔을 적을 기억해낸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를 노란선이 그려진 길을 통하여 안내하였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 나는 문을 철컥 닫고는 조용히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끼익-하면서 의자 다리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앞에 있는 책상에는 헤드폰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간호사의 지시를 기억하며 헤드폰을 썼다. 이제는 완벽히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묘하게 내 귀의 내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함, 내 오래된 친구가 내 몸의 안에 틈입해온 느낌이 들었다. 삐-와 우웅-의 향연이 다시금 들려왔다. 나는 침묵이 두려워졌다.
그렇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명으로 가득찬 나의 소우주가 새로운 침입자를 맞이하였다. 이번 소리는 웅-하고 울렸다. 새로운 소리는 내 왼쪽귀를 향하여 분명하게 외부에서 들려왔다. 새 손님은 저음에서부터 울려 퍼지다가 점차 고음으로 변해갔다. 웅-이 칙-이되어 갔고, 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손에 쥐어진 버튼을 눌러야 했다.
버튼을 눌렀고, 또 버튼을 눌렀다. 소리는 점차 희미해지더니, 아득해져갔고, 종국에는 형태가 있기보다는 그림자의 형국으로 변하였다. 나는 점차 버튼을 누를지 말지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버튼을 누르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 이명소리보다 실제소리가 더 작아져, 실제하는 것이 무명의 베일에 가려질 때였다.
나는 헤드폰을 벗고 무반향실에서 나왔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몇가지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질문이라는 것은 우습기도 그지없었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예민한 편인지, 이명으로 인하여 문제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설문지였는데, 이명의 불편을 숨기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역력하게 보여 불쾌함을 자아냈다.
노란선를 따라 다시금 걸어갔다. 나는 다시 접수데스크에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해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내 이름 석자가 앞의 스크린 대기 목록에 떠있었다. 그리고는 간호사가 한명씩 호명함에 따라 내 순서가 점진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지루함을 때워보려고 생각의 쳇바퀴를 열심히 굴려보다가 나의 순서가 다가왔다.
의사는 피곤에 쩔어버린 얼굴로 나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였다. 내가 이명으로 인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다시금 물어보았고, 설문지 결과를 스크린에 띄워 내 이명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의사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반달모양으로 크게 나있었고, 늘어진 신경마냥 턱살이 접혀버려 추한 모양으로 보였다. 의사의 말의 요점은, 결국 이명은 원인을 알기 어렵다는 원론적 이야기였다.
"에.. 그러니까, 이명이라는 것이 사실은 현대의학에서도 원인을 알기 어려운 병이거든요. 이명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지 않는 이상 일단 무시하라는 권고를 환자들에게 합니다. 네네, 물론 환자들 입장에서는 큰 고통이죠. 저도 이해합니다. 무시하기 어렵다면 몇가지 처방을 내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어떤 처방일까요? 약을 주시나요?"
"네, 처방전을 써드릴 수 있습니다. 우선 이명의 원인이 스트레스일 경우,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을 드릴 수 있고, 혈관의 문제일 경우, 혈관을 넓혀 문제를 해결하는 약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예민하긴 해도 정신때문에 이명이 들린다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에, 그렇지만, 정신쪽 문제가 신체화되어 이명이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환자분 설문조사를 보았을 때에 항불안제를 처방해드리는 것도 좋은 방안이에요. 에, 심혈관 약과 항불안제를 같이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처방전에는 두개의 약이 있었다. 약국에서 약을 수령해보니, 하나는 빨간색이었고 하나는 흰색이었다. 이제 나는 알약을 매 끼마다 먹어야 했다. 나는 알약 두 개가 내 이명을 잠재워줄 수 있을지 믿음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알약을 복용한 이후부터 내 이명은 급속도로 좋아졌었다. 내 이명이 심혈관의 문제였든, 정신의 문제였든, 어쩌면 둘 다였든, 내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나는 평생 약을 먹기만 하면 끔찍한 이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더욱 실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방 안을 둘러본다. 313호, 나의 작은 방. 회색벽지로 마감하였고, 책상은 황토색, 의자는 검은색이다. 책장에는 몇가지 책이 꽂혀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인간 실격' '노르웨이의 숲' 등 인간의 감성을 건드는 소설들이 주로 모여 있다. 책장은 천장과 맞닿아 있는데, 그 맞닿은 부분부터 검은색 곰팡이가 피어있다.
곰팡이는 언제부터 생겨났던 것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곰팡이가 내 시야 밖에서 존재감을 키워왔고, 야금야금 나의 천장을 먹어가다가 결국에는 나에게 꼬리를 밟혔다는 것이다. 곰팡이는 검은색 원들의 집합이다. 다양한 크기의 검은 원이 따닥따닥 붙어 하나의 면을 이루고 있다. 곰팡이는 내 그림자가 되어 나의 등 뒤를 차지한다.
나는 축축하게 침대 위에 앉아있다. 나는 가끔 내 예민함이 눅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나는 꿈에서 검은색 액체괴물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바닥은 예전 학교에서 자주쓰던 목재바닥으로 마감되어 있어, 내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내가 전진하면서 검은 물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검은 물방울들은 눈코입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보고, 듣고, 맡을 수 있다. 그들은 목재바닥을 먹어치운다. 검은 물방울들이 목재바닥을 먹어치우면, 삐걱거리던 나무판자 하나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는 연연하지 않고 계속하여 전진한다. 그렇지만 나는 뒤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 꿈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무너진 마룻바닥 밑으로는 위를 주시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위를 지켜보다가, 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대피한다. 아, 이곳은 정말로 학교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교를 먹어치우는 검은색 액체괴물이다. 무너진 마룻바닥을 계속해서 검은 물방울들이 먹어치운다. 나무는 습기를 머금고, 이가 나가고, 올이 떨어져 버린다. 그렇게 마룻바닥은 무한히 밑으로 떨어지고, 그 밑엔 항상 새로운 마룻바닥이 있다. 바닥 밑에는 항상 바닥이 있다.
내 꿈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인지 나는 알고 있다. 내 예민함의 끝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끝없이 무너지며 예민해져간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검은 물방울 대신에 검은 곰팡이들이 있는데, 곰팡이들이 천장을 무너뜨릴 힘이 있을지 나는 두려워한다.
나는 곰팡이들을 지켜본다. 곰팡이를 지켜보면 점차 그들이 커져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렇게 그들은 나의 현실을 갉아먹고, 내 회색 방을 갉아먹는다. 나는 궁금하다. 검은 곰팡이가 핀 방이 과연 313호 뿐일까? 내 천장을 바닥으로 여기는 413호의 바닥은 과연 무사할까? 어쩌면 서울특별빌라는 곰팡이로 지은 성채가 아닐까? 내가 무의미한 질문을 계속하는 동안 밖에서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
탁,탁,탁- 빗방울이 땅바닥을 때린다. 점차 그들의 소리는 웅장해진다. 우르르 몰려오고 와르르 무너진다. 탁탁거리는 형태는 사라지고 빗소리가 음파의 산을 이룬다. 산사태가 일어난 모양으로 빗소리가 변화해간다. 나는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나는 빗소리의 박자에 맞추어 숨을 쉰다. 그렇지만 평안은 멀리 있다.
나는 침대에 눕는다. 스스로 축축하다고 여기는 내 몸을 건조한 침대위로 뉘인다. 나는 낮잠을 청한다. 비가오는 때에 잠을 자둬야 한다. 서울특별빌라의 소음을 빗소리가 잡아먹을 때에, 내 이명을 빗소리가 가려줄 때에, 잠을 자둬야지만 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잠을 자는 법을 잘 알고 있다. 다크써클이 반달처럼 내려왔던 의사가 처방해준 항불안제를 먹으면 된다. 졸음은 나에게로 스며든다. 밀물이 밀려와 모래사장을 젖게 하듯이, 졸음은 파도를 넘어 흰색 포말의 형태로 나의 뇌 속에 스며온다. 나는 점차 몽롱해진다. 이미 감은 눈꺼풀이 한번 더 감기는 느낌이 든다. 나는 잠을 청한다. 평온이 찾아온다.
행운은 나의 편이 아니다. 행운은 항상 그들의 편이고, 불행은 항상 나의 편이다. 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짐작한다. 아무래도 김수원일 것이다. 수원은 나를 3시쯤에 찾아오는 것을 즐겼다. 아무래도 나를 편한 친구로, 친절한 이웃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편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문을 열어준다.
"뭐야? 되게 늦게 열어주네 흐흐. 자고 있었어?"
"응, 낮잠 자고 있었는데 왜?"
"아니, 그냥 엄마가 과일을 좀 보내줬는데 나눠주려고 왔지."
"오 나 과일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고마워 수원." 난 거짓말을 한다. 나는 과일이 전혀 먹고싶지 않았다.
"뭘, 알지? 친구좋다는 게 뭐냐"
"그래, 고맙다. 흐흐" 나는 표정을 관리한다. 그렇지만 수원은 예리하다. 수원은 예민하기보다는 예리하여 나의 의표를 찌른다.
"또 우울해하지 말고, 힘들면 508호 놀러와라, 마" 그는 친절하다. 그만한 친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우울에 침잠하고 싶다.
"그래 고마워. 나 근데 일단 좀 자둘게." 나는 대화를 일부러 끊는다. 수원은 모든 것을 알 것이다. 그는 똑똑하고, 친절하고, 예리한 친구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잠이 필요하다. 잠을 자둬야 가라앉힐 수 있다. 나의 예민함과 때 모르고 쿵쾅대는 심장소리를 가라앉혀야 나는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수원을 보내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잠깐 사이에 곰팡이가 늘어난 기분이 든다. 밖에 비가 내리고 축축한 습기가 가득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밖에는 우산을 훔치는 도둑이 있고, 공동주택에서 소음을 내는 후안무치한 인간도 있다. 밖은 가득차 있다. 그것이 소음이든, 쓰레기든, 습기든, 밖은 가득차 있다.
그리고 나도 가득차 있다. 먼저, 부끄러움으로 차 있다. 방금 전 수원에게 나의 예민을 들킨 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소음으로 차있다. 내 마음 속 반향실에서 메아리를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뇌가 터질 것 같다. 마지막으론, 심장박동으로 차있다. 내 심장은 편하게 뛰지 않는다. 항상 커피를 두 세잔 마신 듯이 쿵쾅대고 있다. 나는 불안하다. 항불안제를 먹어도 불안하다.
나는 다시 눈꺼풀을 감는다. 대각선 방향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오지만, 빗소리가 베일이 되어 청각을 막아준다. 나는 무거운 문진 같은 잠을 잔다. 나의 한쪽 한쪽을 평평하게 마감해주는 잠이 나의 신경을 이완시키고, 불안을 잠재우고, 심장을 느리게 해준다.
나는 꿈을 꾼다. 이번에는 검은색 액체괴물이 되는 꿈이 아니다. 나는 학생이 된다. 교복으로는 검은 넥타이에 회색 니트를 입고 있다. 나는 복도에 서있다. 나는 알아차리고야 만다. 곧 검은색 액체괴물이 나타나 복도를 무너뜨릴 것이다. 나는 발을 떼려고 한다.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난다. 와지끈-하는 소리가 머리 위 한 보, 두 보 씩 난다. 나는 발을 떼려 한다. 나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모두가 이미 교실 안으로 들어가 있다. 그렇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꿈인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꿈은 내 의지로 움직이지 않고, 내 공포를 내 의지로 막아낼 수도 없다. 무너지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고음에서 저음으로, 칙- 에서 웅-으로 이명이 다가온다. 와지끈-은 이제 다섯 보씩은 들린다. 나는 교실 안을 본다. 다들 자리에 앉아 나를 구경하고 있다. 그 때 누군가가 일어나 교실 문을 열려고 한다. 수원의 얼굴이다. 수원은 교실 문을 열고 내 손을 잡는다. 내 손을 잡고 나를 교실 안으로 끌려고 한다. 그때, 나무 판자가 내 이마를 때린다. 나는 쓰러진다. 나는 대자로 뻗는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깨어난다.
침대는 축축히 젖어있다. 다행이도 검은 물방울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몸을 반만 일으켜 주위를 둘러본다. 변한 것은 없다. 아까 수원이 준 바나나와 귤만 식탁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나는 과일에 대해 생각한다. 수원은 주기적으로 나에게 과일을 나누어주었고, 나는 그 과일들을 항상 다 처리하지 못했고, 그가 새로운 과일을 줄 때쯤이면 몰래 과일을 버리고는 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양심은 지켰다. 양심에 따라 껍질은 일반 쓰레기로, 알맹이는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였다.
그때 무언가가 번뜩 생각난다. 나는 방안을 가로질러가 쓰레기통을 연다. 내 짐작은 맞았다. 초파리 알이 쓰레기통 안 곳곳에 점점이 위치하고 있다. 몇몇은 이미 부화하여 기어다니고 있고, 그 위로 초파리가 몇 마리 날아다닌다. 나는 자문한다. 어떻게 이 꼴이 되도록 모를 수가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자문한다. 그동안 쓰레기통을 얼마나 열고 닫았는지 자문한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곧 이해의 순간이 온다. 나는 곰팡이를 보느라 초파리를 보지 못한 것이다. 초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은, 곰팡이가 나의 현실을 온전히 먹어치웠을 때에만 눈에 보이는 법이었다.
다시 기타소리가 들려온다. 밖에서는 누가 철제 바에 우산을 걸고 있다. 누군가가 벽을 쾅 쾅 쾅- 친다. 현실의 꼭대기 층이다. 이미 이명으로 무너진 꼭대기였다. 나는 다음 층이 뭔지 안다. 다음 층은 알약이었다. 빨간색과 흰색의 알약. 항불안제와, 심혈관 치료제가 나의 두번째 마룻바닥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새로운 바닥이 있다. 검은색으로 천장을 먹어가는 곰팡이가 그 다음 바닥이고, 그 다음 바닥은 초파리와 그 알이었다.
나는 침대에 눕는다. 내 신경에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는 수원을 보낸 것을 후회한다. 그가 내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데, 내가 그를 윗층으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그에게 함부로 나의 내면을 보여준 것을 후회한다. 택시에서 그에게 감정을 한탄한 것을 후회한다. 그는 이제 내 손을 잡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은 그가 내 손을 잡더라도 꿈처럼 너무 늦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바닥이 무너진다. 나는 학생이자 검은색 액체괴물이 된다. 나는 사람이자 괴물이 된다. 나는 곰팡이를 그림자 삼아 세상에 우울을 퍼뜨리고, 이명을 들려주고 다닌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바닥을 무너뜨리고 다닌다. 그렇지만, 그들의 바닥 밑에는 유한한 바닥이 있다. 그들은 결국 끝까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내 바닥 밑에는 또 바닥이 있고, 또 바닥이 있다. 나는 무한히 예민하고, 우울해져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무한히 반복한다. 바닥이 하나 더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