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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May 17. 2024

누나는 바다가 되었다

매우 짧은 소설입니다

누나는 바다가 되었다. 나는 모를 일이지만, 당신이 꼭 바다가 될 것이라 확신하였으니 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사촌누나의 부고를 듣고 노란 장판이 깔린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상복을 입은 삼촌과 친척들이 보였다. 황망하게 떠나 당황스러운 얼굴들이었다. 당황하지 않은 것은 누나뿐이었다. 누나는 환히 웃고 있었다. 눈은 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당신이 인생은 웃고 살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으니, 정말로 웃었을 것이다. 사진기 앞에서 찰칵 즐겁게 웃는 얼굴로 누나는 박제되어 있었다.

나는 점차 누나와 연락이 뜸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삼촌과 아빠의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자식된 자의 재빠른 눈치로 나는 돈문제가 개입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돈은 무서웠다. 점차 돈이 궁해서 나도 궁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누나도, 삼촌도, 아빠도 돈 때문에 궁상을 떨었고, 그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워서 멀어졌을 것이다.

누나에 대한 소식은 뜸하게 들려왔다.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예전에는 같이 놀러다니던 사이였지만, 뜸한 소식으로 만족하였다. 다가가기에는 너무 멀어진 시간이 내 앞에 있었다.

예전에는 명절마다, 제사마다 시골 집에 모여 놀았다. 어린 자식들이라고는 사촌 누나와 나밖에 없었다. 친해질 수밖에는 없는 환경이었다. 우리는 같이 지긋지긋한 시골집을 나와 밖에서 놀았다. 둘이서 용케도 숨바꼭질도 하고, 잠자리를 잡기도 하며 재미나게 놀았었다. 시골집에는 놀거리가 적었지만 어린 아이들의 천진함으로 이겨내었다.

누나는 나보다 5살이 더 많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차였다. 아마 나에게는 많은 쪽이었던 것 같다. 누나는 항상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았다. 누나한테 물수제비를 뜨는 법, 부모님 몰래 피씨방에 가는 법처럼 필수 덕목을 배웠다.   나는 인생에 대한 지론이 없었다. 당연지사였다. 나는 어렸으니까, 늙은이들도 될 대로 사는 막장이 많으니까. 그런데 누나는 인생 지론이 있었다. 나는 누나의 인생 지론에 대해 똑똑히 기억한다.

아마 추석이었을 것이다. 추석 당일 저녁에 우리는 시골 집 천가에 놀러갔다. 날씨가 쌀쌀했다. 천은 좁았고, 졸졸 흘러갔다. 나는 누나한테 막 물수제비를 배워 시도해보고 있었다. 적당한 돌을 근처에서 찾아 물 위로 던졌다. 돌이 두 번, 세 번 튕기더니 물 밑으로 사라졌다. 돌이 가라앉자 소리도 가라앉았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고, 대나무숲이 음산하게 쏴아 울렸다.

슬슬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나는 날씨가 쌀쌀해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누나의 얼굴이 진지해보이지만 않았으면 그랬을 터였다. 나는 누나의 눈치를 보았다. 생각해보면 그 때의 누나는 수능을 준비할 때였다. 이것저것 근심이 많을 때였다. 그렇다 해도 그 때 누나가 뱉은 말은 충격이었다.

지욱아, 저 냇가 보이지?

천가가 보이기는 했다. 너무 좁아서 냇가라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몸이 추워졌다.

졸졸 흘러가는 냇가를 봐. 모든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

뜬금없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나만 진지할 수 있다 생각하던 때였다. 나보다 훨씬 성숙한 누나가 이런 뜬금없는 말을 내뱉을 줄은 나는 몰랐다.

그게 무슨 뜻이야?

인생은 흘러가. 시내처럼, 하천처럼 흐름을 타고 가다가 결국은 바다가 되는거야.

바다가 된다고? 그러면?

바다가 되면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는 거야. 깊은 품에 안겨서 한강에서 온 인생도, 낙동강에서 온 인생도 모두 섞여 하나가 되는 거야. 더는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을 수 있게 되는 거야.

나는 누나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수능이라는 것이 엄청나다고는 들었지만, 단단했던 누나를 무너뜨릴 정도인지는 몰랐다. 나는 누나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고는 집에 돌아가자고 부추겼다.

그래, 네가 이해하기는 아직 이른 이야기지.

누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른이 되었고, 회사를 다니고, 누군가를 갈구기도 하는 지금도 나는 모르고 있다. 인생이 왜 흐른다는 것인지, 그냥 살아가는 대로 살아지는 게 인생이 아닌지 말이다.

만약 인생이 강처럼 흘러가는 것이었다면, 누나와 나는 아주 가까운 강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산을 만나 방향이 틀어져 각자의 길로 갔을 것이다. 나는 나의 길로, 누나는 누나의 길로 말이다. 이제와서는 그 산이 정말 누나와 나를 떨어지게 할 정도로 컸는지 의문이지만, 그때의 나는 자연스레 누나와 멀어졌다. 어른들의 사정은 아이들의 우정보다 더 힘이 쎘다.

나는 절을 하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어색한 친척들이 여럿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맞장구를 치며 동조하는 척했다.

아니 상미가, 그 요즘 뭐라냐 히키코모리기는 했지.

그래도 애는 엄청 착했어. 봉변을 당한 거지. 어떻게 웬 미친 놈한테 걸려서 사고를 당해.

그래서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해야 되는 거야. 하여튼 대통령이고 판사고 다들 자기 자리만 지키느라 급해서 말이야.

나는 숟가락으로 육개장을 떠먹었다. 조미료 맛이 났다. 맛있지만 전형적인 맛이었다. 친척 어른이 따라주는 소주를 두 손으로 받아 조용하게 마셨으며, 젓가락으로 전과 고기를 집어먹었다.

지욱아, 네가 상미랑 친했잖아. 괜찮아?

몇 촌인지 기억이 안나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네네, 저도 어릴 때나 좀 친했지, 어른 되면서는 연락도 거의 없었죠. 전 괜찮아요. 삼촌이 마음 안좋으시겠죠.

그래, 지욱이 어른이 다 되었네  정말. 이게 무슨일이니, 상미가 갑자기 사고를 다 당하고.

나는 갑자기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졌다. 누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아무 말이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적 나에게 누나는 길잡이였다. 5살 먼저 나의 인생의 고난을 경험하고 경고해주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어떤 어른보다 더 어른이었다. 나는 누나에 대해 진실로 슬퍼하는 자리에 있고 싶었다. 이 자리는 부질 없었다.

나는 급한 업무가 있는데 겨우 장례식에 참여한 걸로 변명했다. 그리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갈 곳은 정해지지 않았다. 당연히 업무를 하러 회사로 갈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맥주 한 캔과 오징어 쪼가리를 사서 한강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시골 천가에서 우리도 뛰어놀았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한강을 바라보며 누나에게 물었다. 마음속으로 계속 되물었다. 누나는 바다가 되었냐고, 이제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잊고 너른 품에 안겨 있냐고 말이다.

아마 누나는 인생을 물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다. 물처럼 자유롭고, 물처럼 유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살고 싶었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그저 흘러가고 싶었으니까.

한강은 깊고 낮게 흘러간다. 한강 다리에서 형형의 빛들이 나와 물가를 비추었다. 다리의 밑바닥을 기준으로 데칼코마니가 된 모양이었다. 물 위에서도 다리는 빛났고, 거대했다.

나는 누나는 아마 한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리가 너무 많아서, 돌부리와 먼지와 구정물이 너무 많이 흘러들어와 어렵게 바다로 나아가는 한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애물이 너무 많아 누나는 힘들었을 것이다. 물처럼 고고하게 살고 싶었는데 아둥바둥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나는 방에 틀어박혔을 것이다.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허기가 져 편의점에 갔을 것이다. 재수없게 음주운전 차량이 덮친 건 누나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나는 강이었으니까. 누나는 운이 안좋게 다리가 많은 강이었을 뿐이니까.

사실 누나는 내가 군대갈 적에 연락해왔었다. 근 8년만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내가 입대한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해오고, 몇십만원을 송금해주었는지 모른다. 삼촌과 우리 가족은 아예 왕래가 없었는데, 아마 다른 친척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누나는 말했다. 돌부리는 어디에나 있는 거라고, 그렇지만 물은 돌부리를 뛰어넘고, 부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누나가 준 돈을 귀중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이미 과거의 지나간 인연으로 생각했고, 다시 만날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휴가를 나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느라, 여행을 가느라 금세 다 써버렸었다. 물론 누나와 내가 다시 만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로 아예 가능성조차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도 바다가 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흘러가는 것일까? 그 종착지가 바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누나를 생각하고 있으니, 나도 바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는 머리가 이상해진 누나의 궤변이라 생각한 말이었는데, 이제 나도 누나와 함께, 하나가 되어, 슬픔도 고통도 없는 곳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좋은 곳으로 떠난 건 누나고 여전히 우리는 흐르느라 정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맥주를 다 마셔버리고, 집으로 향했다. 감상은 그만하고 계속하여 흘러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결국 누나와 다시 만나기를 바랐다. 너른 바다가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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