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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단비 Feb 27. 2024

15. 출근은 계속되어야 한다 #05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이것은 불굴의 출근 기록이다.


#5


2020년 초, 확진자들의 동선이 뉴스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만큼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이 극에 달해 있던 시절이었다. 확진자와 함께 있었던 10명 중 전염되지 않은 2명에 포함되었을 때는 그저 운이 좋은 줄 알았다. 좁은 회의실에 갇혀 밤낮으로 함께 일하던 팀원 중 한 명이 확진되었을 때는 이제 내 차례겠구나 생각하며 방에 감기약과 주전부리를 채워 넣으며 미니 편의점을 차리기도 했다. 그 다음 날부터 확진 받은 팀원의 앞자리, 옆옆자리, 대각선자리에 앉았던 팀원들 한 명씩 코로나에게 백기를 들었는데, 정작 바로 옆자리였던 나만 멀쩡했다. 그 때부터는 의심이 시작되었다.


‘슈퍼 항체를 가지고 있는 건가?’


6명의 팀원 중 나를 제외한 5명이 아팠던 때는, 팀원들에게 미안하지만 내심 안도감을 느꼈다.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프로젝트 진행이 불가하여, 고객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을 쉬었다. 매일 새벽까지 일한 지 딱 3주가 되던 시기였다. 꿀 같은 휴가였다. 프로젝트 종료 후에 주어진 휴가라면 당장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고, 호캉스라도 갔을 테지만, 수면이 더 시급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12시간씩 자며 모자란 잠을 보충했다.


6명의 팀원 중 2명이 코로나에 걸렸던 프로젝트도 있었다. 물론 그 2명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픈 사람들의 몫이 그대로 분산되어 남아있는 자들에게 넘겨졌다. 사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새벽 2시까지 일하다가 새벽 3시까지 일하게 되었을 뿐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몫을 대신 하고 있다는 고약한 심보 때문에 마음이 조금 힘들었을 뿐.


결국 2020년, 2021년, 코로나가 들불처럼 번지던 2년을 흔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나왔다. 비염 탓에 환절기마다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마스크 덕인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코로나19 발발 직후에는 다른 이들이 그랬듯, 코로나에 걸리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지만 주변에 걸린 지인들이 감기 앓듯이 겪고 지나가는 경우들이 하나둘씩 생기자 걱정이 차츰 잦아들었다. 대신 부끄럽게도 2년 넘게 격무에 시달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코로나 걸리고 싶다.’


엄마가 알면 등짝 맞을 이야기지만 진심이었다. 코로나가 아닌 이유로 아프면 연차는커녕 자정 전에 퇴근하는 것이 유일한 처사인 현실이 코로나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독감에 걸려도 출근은 해야 하지만 코로나에 걸리면 법적으로 쉬어야 했으니까.


2022년, 결국 바람이 이루어졌다. 다만 타이밍이 최악이었을 뿐.


일주일 간 휴가를 가지고 월요일 복귀와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는 일정이었다. 팀장으로서 프로젝트 직전에 챙겨야 할 일이 한가득이었지만 어느 정도 ‘짬’이 찼으니 복귀 하루 이틀 전에 열심히 살펴 보면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휴가가 끝나기도 전 목요일부터 고객사에서 불 나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휴가였던 나 대신 미리 프로젝트 예습을 하고 있던 팀원들에게 연락해보니, 준비해야 할 자료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휴가 중이니까'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랬다가는 그 업보가 복귀 후에 고스란히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못 본 척할 수가 없어서 집에서 쉬다가도 몇 번씩 노트북을 열고, 자료를 만들고, 메일을 썼다. 아예 인터넷이 안 터지는 시골로 갔더라면 마음이 좀 편했을까 생각하며 한껏 불편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금요일 밤, 자고 일어나니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밤새 흘린 식은땀에 이불이 축축했는데, 일어나자마자 메일과 카톡 알림 끊임없이 울렸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병원으로 걸어가는 도중에도 그 알림을 무시할 수 없어 열심히 답장했다.


코로나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랬다. 코로나라 해도 마냥 쉴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진행 도중도 아닌 시작 직전, 팀원도 아닌 팀장인 내가 쉴 수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자가격리 중에 재택근무로 일하게 되면 일의 양은 그대로인데 일의 효율만 낮아질 터였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리고 싶었던 순간에도 그랬듯, 운명은 거꾸로 갔다.

“열이 39.5도인데… 여기까지 걸어오셨어요?”

“코로나입니다.”


전혀 반갑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복귀 직전 휴가 기간 중, 주말의 코로나라니. 일을 조금씩 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틈틈이 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쉬지도, 일하지도, 아프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건 필시 일하기 싫은 마음이 뒤틀린 현실로 드러난 것일 테다. 슈퍼 항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 코로나에 걸렸음을 알렸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처참했다.


“월요일에 미팅 잡혔는데 목소리 나오겠어?”


울고 싶었다. 휴가 기간 중 이틀은 집에서 노트북을 잡고 있느라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고, 주말은 코로나 때문에 골골대느라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순삭당했다.


월요일 아침, 열은 조금 내린 38도. 따뜻한 물 한 컵을 옆에 두고 회사가 아닌 내 방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남들은 코로나라고 2주 동안 격리하면서 쉬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다가도 주말 사이에 쌓인 메일함을 보면, 팀장 없이 고생했을 팀원들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앞섰다. 말할 때마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출근이었다.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단비

hidamb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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