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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단비 Feb 13. 2024

07. 팀장이 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돌이켜보면 일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진 순간들은 매번 승진 직후였다.


전략 컨설턴트는 보통 5명이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보통 외부 기업의 전략 수립 혹은 투자 의사결정이 프로젝트의 주제가 된다. 1~2년 차인 주니어 컨설턴트 2명, 3~5년 차인 시니어 컨설턴트 2명, 그리고 팀의 리더인 PM(프로젝트 매니저, 호칭은 팀장) 1명이 보편적인 팀 구성이다. 주니어 컨설턴트는 주로 시장 조사, 내부 데이터 정리 등 손이 빨라야 하는 일을 한다. 시니어 컨설턴트는 프로젝트를 쪼갠 일부분을 담당하게 되며, 맡은 부분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면서 주니어 컨설턴트와 협업한다. PM은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정하고,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 하고, 시니어 컨설턴트들에게 업무 방향성을 지시하고, 팀원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취합하고 보완하여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소규모의 팀으로 짧은 기간 동안 프로젝트 하나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다 보니, 각 직급에 따라 해야 할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승진 주기가 짧아서일까, 주어진 직급에서 해야 할 일에 익숙해질 때쯤 되면 승진과 함께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인데, 어제의 주니어가 오늘의 시니어가 되는 순간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가 완전히 달라졌다. 어제까지는 미팅에 시니어와 함께 참여해 회의록만 잘 정리하면 되었는데, 오늘부터는 혼자 참석해서 미팅 자체를 이끌어야 하는 일이, 매 승진 때마다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많이 힘들어했었다.

분명 어제는 칭찬받았는데, 오늘은 왜 혼났지?

난 이 업무를 처음 하는 건데, 왜 나한테 기대하는 바가 이렇게 크지?

그 무렵의 내가 일기장에 가장 많이 썼던 문장들이다.


모든 일터가 그렇듯 각자의 몫을 해내지 못하면 나 자신은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이 고통받았다. 특히, 이곳에서는 구성원에 대한 평가가 프로젝트 끝날 때마다 이루어지고 비공식적으로 공유 되었기에, 새롭게 주어진 역할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이었다.


“걔 일 잘한다던데?”

“내가 이번에 일해보니까 못하던데. 시니어 그릇은 아닌가 봐.”


이렇게 한 번 암암리에 주홍글씨가 붙고 나면 편견이 쌓여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러면 회복할 기회를 잃고, 성장은 더 더뎌지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승진을 하면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고, 새롭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다. 인턴에서 주니어로,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올라갈 때마다 얼마 간의 시간은 걸렸지만 다행히 어떻게든 정상 궤도에 들어가곤 했다.


문제는 팀장이었다. 


그저 4명의 팀원 중 하나였던 주니어, 시니어 역할과 팀장 역할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컸다. 팀원이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역할이라면, 팀장은 일을 발굴하고, 적임자에게 배분하고, 힘들어하는 팀원이 있으면 다독거리던, 채찍질하던 어떻게든 다시 궤도로 돌아오게 만들고, 결과물을 상사에게 가져가 검사받고, 최대한 완벽한 결과물을 고객사에 가져가 보고하는 것까지 해내야 했다.


컨설팅을 처음 할 때부터 ‘PM(팀장)은 컨설팅의 꽃이다', ‘그만두려거든 팀장은 꼭 해보고 그만둬라. 그래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라는 선배들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는데, 실제로 팀장이 되어 그 모든 것을 겪고 나니 그제야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끄는 역할은 그저 주어진 업무를 해낼 때에 느껴지던 부담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건 책임감도 마찬가지여서,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일이지만 현재의 프로젝트가 오롯이 나의 의사결정에 달려 있는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비로소 주인 의식이 생긴 것이다. 일에 대한 중압감으로 밤마다 프로젝트가 망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PM이 된 이후부터였다.


과중한 책임감과 업무량과는 별개로 팀장이라서 더 힘든 것이 또 있었다. 바로 관계였다. 분명 지난주까지 회식 자리에서 함께 깔깔댔던 동료가 하루 만에 나의 팀원이 된 것이다. 내가 직접 업무를 지시하고, 결과물을 평가해야 하는 나의 팀원.


분명 지난 프로젝트에서는 같은 팀원의 입장에서 같이 불평도 하고, 팀장에 대한 불만도 함께 얘기했는데, 이제 나는 팀장, 그는 팀원이라니. 이만큼의 업무를 줘도 될까, 너무 업무량이 과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른 팀원과 함께 나를 욕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우리 팀 회의실은 사무실 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 회의실에서 조금만 크게 떠들면 사무실 문 밖 복도에서 그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오전 외근을 마치고 점심시간 즈음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부터 팀원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재밌는 일이 있나 기대하며 문을 여는 순간 거짓말처럼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사.


“오셨어요, 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


언제 그렇게 웃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는 팀원들에게 차마 무슨 이야기 중이었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팀장이었기에.


그날 집에 돌아가 나의 지난날을 반성했다. 


나는 주니어 때 얼마나 많은 팀장들을 욕했는가. 집에 빨리 안 보내준다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다시 해오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줘야 일을 시작하는데 빨리 결정을 안 내려준다고.


내가 과거에 잦은 밤샘 업무로 힘들었던 만큼 내 팀원들은 적어도 밤 10시에는 퇴근을 시켜줘야겠다고 다짐했지만, 팀원들의 업무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핵심적인 것들이 빠져 있고, 퇴근 직전에 받아본 결과물에는 자잘한 실수들이 많아서 다 고치고 퇴근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모든 것이 순조로운 날에는 갑자기 고객사 보고가 앞당겨져 야근을 더 해야 하는 일 생겼다. 그럴 때마다 과거 속으로 욕했던 모든 팀장님들에게 사죄했다.


‘늦었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팀장이 되어보니 이제야 알겠어요. 집에 빨리 못 가는 것은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있기 때문이고, 시키는 대로 했다고 생각했지만 디테일이 부족했을 것이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는 것을.’


이제와서는 그날의 일을 당시의 팀원들에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사실 유사한 일을 몇 번 더 겪으며 깨달았다. 팀원들에게 팀장은 사측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들끼리 팀장을 욕하는 시간도 모종의 스트레스 해소와 팀원 간의 유대감 형성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팀장의 역할은 팀원과 마냥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바다를 건너 올바른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잘 인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단비

hidamb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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